[현장] 공보물 못 읽는데 가족은 "O번 찍어라"... 이주여성들의 험난한 투표

입력
2024.04.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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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투표 교육받는 이주 여성들
투표권 있는지, 어떻게 행사하는지 몰라
"선거 참여해야 한국인 권리 행사 가능"


"중국에선 투표를 한번도 못 해봤거든요. 그니까 제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거죠?"

사전선거 두 번째 날인 6일 경기 김포시의 한 사무실. 17평 공간에 여성 1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들의 눈빛은 배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났다. 이 여성들은 한국 남성과의 혼인으로 국내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들. 이들이 투표 교육을 받기 위해 이주민 모임 '너나우리행복센터'에 왔다. 창문 밖에서 선거 유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도중에, 이경숙 센터장이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도 대한민국 주인입니다."

국정을 이끌어갈 대표를 직접 뽑는 선거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어려서부터 익힌 '당연한 권리'겠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거나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은 곳에서 온 이들에겐 낯설 수 있는 과정이다. 또 현지에서 투표를 해봤다고 해도 한국 선거와는 특성이나 방식이 확연히 달라 적응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주민 중에선 선거가 뭔지, 내가 유권자가 맞는지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국민의 기본권에서 소외되는 이주여성을 돕기 위해,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겸직하는 이 센터장이 중앙선거연수원 강사로서 7년째 이주민들을 위한 투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선거란 투표를 통해 우리 대표를 선출하는 겁니다. 선택된 대표자는 우리나라 재정을 운영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이 센터장은 이주민 눈높이에 맞춰 개념 하나하나를 짚는 것부터 시작했다. 선거가 없었던 타 문화권 여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원의 차이, 영주권자는 지방선거 투표가 가능하다는 말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센터장은 "한국인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이주민에겐 인생에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게 선거"라며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공약이 담긴 공보물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선거에 쓰이는 세금이 버려진다는 점을 듣고 더욱 관심 깊게 살폈다. 투표를 해야 내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나에게 맞는 공약을 살펴야 한다는 게 교육의 요지였다. 중국에서 온 영주권자 진송월(40)씨는 "귀화자가 아니라 이번 총선 때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지방선거 때는 반드시 투표를 해야 나와 내 아이들이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의 투표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곳곳에 널려 있다. 일본에서 귀화한 지 6년 된 구미정(53)씨는 "한국어에 서툴렀을 때는 공보물이 한국어로만 돼 있어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아 아쉬웠다"고 답했다. 구씨는 "그러다 보니 공약을 제대로 못 읽고 가족이 '누구 뽑아라'하는 대로 뽑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황금철(53)씨 역시 "한국어를 잘 모르니 당 자체가 헷갈리기도 했다"고 답했다.

'투표 제대로 하는 법'을 어디 가서 배울 길도 없다. 외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해 듣는 사회통합프로그램 등에는 투표나 참정권에 대한 교육이 없다. 진송월씨는 "어떻게 투표를 할지 방법에 대한 건 이번 강의로 처음 알았다"며 "귀화자 자료를 갖고 있는 동사무소나 정부기관에서 외국인을 위한 강연을 열고 안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금철씨는 "당장 애 키우거나 먹고살기 바쁘니 투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외국인 투표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에 대해 말했다.

법무부와 통계청의 '2022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귀화허가자의 최근 5년 이내 실시된 선거 참여 여부를 따져보니 27.4%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불참 이유로는 "관심이 없었다"가 18.2%로 가장 많았고 "투표권이 있는지 몰랐다"는 응답도 3.8%에 달했다.

이경숙 센터장은 한국인이 된 이주여성들이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통해 자기 권리를 찾기를 소망한다. "더 많은 이주민들이 투표를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나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서요. 그 역할에 제가 힘을 보태고 싶어요."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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