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로 시작된 의료공백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응급·중증 환자가 치료할 곳을 찾지 못한 채로 사망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환자 사망이 전공의 이탈과 뚜렷이 연결된 사례는 아직 없지만, 환자들이 모두 비수도권에서 위급 상황을 맞았다가 숨지면서 지역의료의 고질적 부실 상태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보건복지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즉각대응팀이 지난달 충북 충주시에서 사고를 당한 뒤 숨진 70대 A씨 사건을 현장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5시 10분쯤 전신주에 깔려 부상을 당한 뒤 치료를 받다가 이튿날 새벽 사고 9시간 만에 숨졌다.
사망 경위는 이렇다. 119 구급대가 발목 골절상을 입은 A씨를 건국대 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에 이송하려 했지만 각각 '마취과 의사가 없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A씨는 오후 6시 20분쯤 충주 시내 정형외과로 옮겨져 발목 수술을 받다가 복강 내 출혈이 발견됐다. 외과 전문의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었던 이 병원은 강원 원주의 연세대세브란스기독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외과 수술 환자 2명이 대기 중이라는 이유였다. 충북대병원은 연락이 닿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결국 이튿날 오전 1시 50분쯤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오전 2시 22분에 숨졌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전공의 집단행동과 관련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입장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중수본 브리핑에서 "구급대가 처음 환자 상태를 평가할 때 복강 내 출혈 부분은 의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종합적인 내용은 조사가 끝난 뒤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응급의료 전달체계가 잘못 작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 병원은 수술 대기 환자를 이유로 전원을 거부했다는데 더 응급한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게 맞는 만큼 대기 환자 상태가 어땠는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의료공백 국면에서 환자가 전원이 원활치 않은 가운데 숨진 일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6일 부산에서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90대 노인이 인근 대학병원에 시술 가능한 심장내과 전문의가 없어 울산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가 숨졌다. 충북 보은군에서는 지난달 30일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기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개 병원에 전원을 타진했지만 결국 이송되지 못한 채 사망했다.
다만 전문의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지역 의료기관의 현실 탓에 환자 처치가 기민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문의들이 개원가로 몰려 경증 질환을 다루는 병·의원에선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대학병원, 특히 지역 병원은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할 전문의가 부족해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구급대의 환자 재이송이 3만7,218건 발생했는데 재이송 사유 중 '전문의 부재'(31.4%)가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