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가계 '여윳돈' 최저… 민생 초점 서민에 맞출 때

입력
2024.04.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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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금리와 불경기, 소득정체 등의 부정적 여파가 금융상품 등으로 운용되는 가계자금인 ‘여윳돈’의 급감으로도 뚜렷이 확인됐다. 4일 한은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순자금운용액’은 158조2,000억 원으로 전년(209조 원) 대비는 물론 최근 4년 만에 가장 적었다. 순자금운용액은 당해 각 경제주체의 자금운용액에서 자금조달액을 뺀 값이다. 가계가 예금ㆍ채권ㆍ주식 등으로 보유한 일종의 순자산액이 1년 새 50조 원 급감했다는 얘기다.

가계는 보통 순자금운용액이 양(+ㆍ순운용)인 상태에서 여윳돈을 예금이나 투자 등을 통해 순자금운용액이 대체로 음(-ㆍ순조달)의 상태인 기업ㆍ정부에 자금을 공급한다. 따라서 가계 순자금운용액이 줄었다는 건 국가경제에서 가계의 자금공급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한은은 지난해 불경기와 고금리로 증가율이 2.8%까지 떨어진 가계소득 및 1.8% 증가에 그친 가처분소득 정체를 상황 악화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순자금운용을 기록할 만한 가계라면 어쨌든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가계 여윳돈이 줄어든 사실보다 중요한 건 여윳돈조차 없는 가계에 더 크게 미쳤을 고금리와 불경기, 소득정체 등의 타격이다. 가계라도 소득이 적을수록 가처분소득이 적고, 여윳돈은커녕 빚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21년 기준 대기업 근로자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은 중소기업 근로자 가계의 경우, 여윳돈 고갈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주거비는 전년 대비 8.6% 급증했고, 가계대출 이자비용도 전년 대비 31.7%나 급증했다. 이런 비용은 대부분 저소득ㆍ비(非)자가ㆍ부채 가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가계 여윳돈 급감 통계는 그 자체보다, 그 이면의 여윳돈조차 없는 가계에 대한 민생대책이 절실한 상황임을 일깨우는 경고등으로 볼 필요가 크다. 여야가 앞다퉈 총선용 민생을 앞세우지만, 서민 가계에 힘을 보태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할 민생대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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