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재판부마다 인정하는 배상 액수가 달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며 잇달아 항소하고 있어 국가폭력에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상당 기간 미뤄질 전망이다.
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총 34건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가 지난해 12월 21일 국가가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원고 26명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후,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엔 부산지법에서도 같은 취지로 "피해자 70명에게 총 164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는 등 최소 12건 이상 피해자들이 1심에서 승소했다.
문제는 소송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재판부마다 인정하는 피해 범위에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처음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부랑인 강제수용 지침이었던 '내무부훈령 410호'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1975년 12월 15일 발령 이전에 입소해 있던 기간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한 피해자는 1971년 4월부터 약 11년치 위자료를 인정 받았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지난달 29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면서 "훈령의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 작용을 피고의 불법행위로 보는 이상, 훈령 시행 전 수용 기간에 관해선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960년부터 운영된 형제복지원 측이 내무부훈령 발령 이전에 저지른 불법행위까지 국가가 책임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신적 피해보상금(위자료) 산출 방식도 차이가 난다. 지난해 12월 판결에서 국가의 책임 범위를 '1년당 약 8,000만 원'으로 처음 제시했다. 이후 다른 재판부도 이와 유사하게 배상금을 산정하고 있지만, 일부 재판부는 뚜렷한 산정 기준을 밝히지 않아 일부 피해자들은 배상액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의 재판부가 독립된 판단을 한 결과이고 항소심·상고심을 거쳐 편차가 좁혀지기는 하겠지만, 이미 피해자들이 고령인 과거사 사건의 특성상 결과가 천차만별이면 '정의 구현' 시점이 그만큼 지연된다는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이 불복해 항소하면 구제받을 날은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첫 승소 판결과 지난달 29일 재판을 모두 맡았던 법무법인 일호의 김소라 변호사는 "위자료 산정은 재판부 재량이지만 훈령 발령 시점을 기준으로 삼은 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빠른 피해 회복을 바라는 다수 피해자들은 항소를 하지 않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피해자들은 항소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마저 "다른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항소하고 있어 빠른 피해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까지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정부는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에 선고된 12건 판결에 대해 모두 항소했다. 피해자 측은 "그렇게까지 해서 배상금 몇 푼을 깎으려는 가해자 대한민국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피해자들을 몇 번 죽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사건의 공식 피해자만 수만 명에 달하는 만큼, 지리한 법정 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 입소자로 확인된 인원은 3만8,000여 명에 이른다. 이날 법률구조공단은 진화위로부터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490여 명의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 육아원으로 설립된 형제복지원은 1971년 시설 목적을 부랑인 쉼터로 바꾸었다. 1975년 12월부터는 박정희 정부가 부랑인 단속을 내무부훈령으로 정하면서 공권력에 의한 강제수용이 공식화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감금과 폭행,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권력이 법적 근거 없이 사회적 약자를 탄압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