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을 늘려도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 않음을 여러 통계와 조사로 확인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대국민 담화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내년도부터 2,000명 늘려도 예비 의사들의 교육 여건은 악화되지 않을 거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은 지금도 의대생 교육의 핵심 요소인 임상실습이 "학생들을 병풍처럼 세워두는 식"으로 파행하고 있다며 교수들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한다.
7일까지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의대 교수 7명은 정부가 병원에서 이뤄지는 임상실습 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증원을 강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강의실에서 주로 이뤄지는 기초의학(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과 달리, 임상실습 교육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의대생이 진료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교수는 학생 여럿, 전공의 한두 명과 팀을 이뤄서 의사의 역할을 도제식으로 교육하는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의대가 꼭 받아야 하는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으로 △의대생에게 주당 36시간 이상, 최소 52주의 임상실습이 이뤄져야 하며 △단순 관찰과 같은 수동적 방법 이외에 의료진의 일부로 실제 진료에 참여하는 등 의사의 업무를 익힐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교수들이 말하는 현장 상황은 이와 사뭇 다르다. 학생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스승의 역할을 보고 익히기는커녕 환자 얼굴만 보고 돌아가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다수라는 것이다. 충청 지역 국립대 의대의 호흡기내과 소속 A교수는 "막 임상실습을 나온 학생들은 교수가 직접 환자를 배정해주고 소개해줄 거라 기대하는데, 정작 교수는 너무 바빠서 월요일 오리엔테이션에서 환자 명단 주면서 '알아서 돌아' 지시하고는 끝낸다"며 "매주 보고서를 제출받고도 시간이 없어 격주마다 피드백을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원이 늘어나면 대학뿐 아니라 병원에서 학생들이 머물 공간이 더 필요한데, 병원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게 교수들의 얘기다. 노재성 아주대 의대교수협의회 회장(정신건강의학과)은 "정신과 병동에 20개 병상이 있는데, 학생들은 1개 조에 8명씩 4주 동안 실습을 온다. 정원이 3배로 늘어나면 24명이 정신과 병동에 와야 한다"며 "그러면 병실을 몇 개 비우거나 해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 회장은 "물론 6·25 때도 천막 치고 의대생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전쟁 중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2023년 의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으로, 증원을 하더라도 법정 기준인 교원 1인당 학생 8명에 크게 못 미친다"고 했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은 의학계열 교수 1인당 학생 수 법정기준(대학설립운영기준)은 1996년 마련된 '최소' 기준으로, 변화한 의학교육 현실을 파악하는 기준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 따르면, 대학별로 임상의학 전임교수가 최소 20개 전공과목에 1명 이상, 총 85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의평원이 2021년 조사한 결과 의대 한 곳은 임상의학 교수가 71명이어서, 다른 한 곳은 교수들 전공과목 수가 16개여서 각각 기준에 미달했다.
교수들은 진료 및 연구 실적 압박에 의대생 교육에 소홀해지기 쉽다고 토로한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승진을 할 때 요즘은 SCI(과학논문 인용색인·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를 뜻함)급 논문을 써야 하는 등 기준이 강화돼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삼성이나 아산병원처럼 '재벌 병원'이 들어오면서 교수 임금체계도 호봉제에서 인센티브제로 바뀌었다"며 "교수가 검사와 수술을 많이 하면 병원 수익이 향상되고 본인 고과가 높아지기 때문에,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버거워진 것"이라고 했다.
A교수도 교수들이 일부러 학생을 방기하는 게 아니라고 호소한다. "당장 회진도 해야 하고, 오전 외래진료도 들어가야 하고, 내시경도 해야 하고, 중환자실도 봐야 한다. 우리 병원 임상교수들은 교육에 할애할 시간을 10%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병원이 진료뿐 아니라 의대생 교육 역시 전공의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도 지적했다. "10%를 교육에 할애하는 것도 전공의들이 입원환자를 지키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다. 지금처럼 교수들이 환자를 지켜야 하면 그마저 시간이 안 난다. 민낯을 솔직히 밝히면 지금은 연명의료 하듯 학생 교육을 하고 있는 거다. 책임감 있는 교수님 몇 분이 간신히 해내는 구조다."
부산 지역의 사립대 의대 B교수는 "교수 한 명이 간호사를 포함해 병원 직원 10명 정도의 월급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며 "교수를 늘리더라도 새로 뽑힌 교수가 진료로 병원에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가 교육 준비 때문에 외래 진료에서 빠지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교수가 보는 환자 수가 줄면 (진료)과의 수입이 줄고, 그렇게 되면 병원장뿐만 아니라 간호사에게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2004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임상의학 교수 386명의 주요 직무별 활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교수들은 직무시간의 58%를 진료 활동에 할애했고 14.7%를 연구 활동, 13.4%를 교육 활동에 썼다. 2021년 '의과대학 임상교원의 교육자로서의 역할인식이 직무 열의와 직무 소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된 논문을 보면, 임상의학 교수 143명에게 '전체 역할을 100으로 볼 때 각 역할에 대해 인식하는 비중'을 묻자 임상의(의사)로서의 역할 비중이 평균 50.8%였다. 교육자 역할 비중은 29.4%, 연구자 역할 비중은 23.2%였다.
정부는 늘어난 의대생이 본과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2027년까지 지방 거점 국립대병원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려 의대 교육의 질을 제고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충분한 대책이 아니라고 의대 교수들은 입을 모았다. 기금교수처럼 대학병원에서 일하지만 정식 교원은 아닌 이들을 적극 '전임교수'로 전환 채용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교수들의 진료 부담이 줄어들지 않으면 조삼모사식 대응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비전임교원이 전임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그들이 원래 하던 일, 환자를 보는 일이 줄어드겠냐"며 "이름만 바뀌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했다.
교수 충원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의대생 임상교육 시기는 앞당겨지는 추세라, 당장 내년부터 입학할 의대생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의대에 적용되던 '예과 2년·본과 4년'의 수업연한 규제가 사라져 '본과 6년' 운영도 법령상 가능하다. 신입생 때부터 임상실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 지역 의대 가정의학과 C교수는 "임상의학 교수들이 기초의학·임상의학 통합교육을 하고 있고, 본과 교육과정의 많은 부분이 예과로 내려오고 있다"며 "내년 신입생이 대폭 증원되는 대학은 당장 예과 교육부터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의대라면 교수 구인난도 심각하다. 경남 지역 국립대 의대에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D교수는 "소아청소년과 교수 한 명이 병가 중이라 전임교수를 뽑으려고 공고를 내고 있는데 벌써 5년째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대는 서울에 있는 의대보다 월급을 2~3배 더 줘야 교수를 뽑을 수 있을 거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고 했다.
국립대와 달리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 교수를 늘려야 하는 지방 사립대는 의대 교수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 거란 관측이 나온다. 경북 지역 사립대 의대 E교수는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지방대) 병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환자 규모가 정해져 있다"며 "이런 조건을 감안하지 않고 교수를 무작정 채용하면 병원이 어떻게 인건비를 감당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분을 지방대 위주로 배분하면서,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5,058명)은 수도권에 28.4%(1,435명), 비수도권에 71.6%(3,623명)가 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