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손님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경제에서, 공급자가 가격 책정을 포기한다면 아마 모든 소비자는 최저 금액을 낼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예측이다. 정말 그럴까?
지난달 3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 '누구나 클래식'에서 바로 이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이 공연은 영화, 광고, 드라마 등에 삽입돼 대중의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을 선정·연주해 클래식 공연의 문턱을 낮추려 마련된 행사. 2007년부터 선보인 1,000원으로 오페라, 마당놀이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천원의 행복’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번 공연에선 이금희 아나운서가 해설을 맡아 곡 이해를 돕고, MBC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와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음악을 맡았던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이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등을 연주했다.
관객은 온라인 신청자(경쟁률 3.3 대 1) 중 무작위로 추첨해 선정했다. 당첨된 일반 관객(1,709명)에게 관람료를 1,000원, 3,000원, 5,000원, 1만 원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방식(관람료선택제)이었다. 통상 10만 원대(VIP석 기준) 정도의 공연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세종문화회관에 따르면 최저가인 1,000원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한 관객은 230명(13.5%)에 달했다. 5,000원을 지불한 관객이 106명(6.2%)으로 가장 많았고, 3,000원 82명(4.8%),1만 원 42명(2.5%) 순이었다.
최저가보다 돈을 더 지불한 이들이 설명한 이유는 다양했다. 1만 원을 내고 관람한 박아영(43)씨는 "자녀 2명과 매년 최소 한 차례 함께 공연을 보는데, 보통 최소 3만 원이었다"며 "세종문화회관이 부담 없이 클래식 공연을 즐길 기회를 제공해준 데 대한 고마움과 이런 공연이 지속 가능했으면 하는 마음에 1만 원을 냈다"고 말했다. 역시 1만 원을 냈다는 황혜림(37)씨는 "1,000원도 있어 고민했는데 1만 원 내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 양심적으로 선택했다"며 웃었다.
3,000원을 낸 박모(78)씨는 "1,000원은 너무 싸고, 그렇다고 5,000원 내기도 좀 그래서, 당첨된 친구도 나도 3,000원을 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김모(58)씨는 "수시로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 공연 일정을 확인하는 딸이 당첨돼 5,000원 내고 예매했다"며 "이렇게 좋은 공연을 어떻게 1,000원 내고 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래도 대다수 관객은 1,000원을 선택했다. 전체 평균 관람료는 1,565원이었다. 서울 관객의 평균 관람료는 1,604원이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1,000원보다 관람료를 더 낸 관객의 비율은 성동구가 32.0%(25명 중 8명)로 가장 높았고, 중구(25.0%, 28명 중 7명), 강동구(23.4%, 47명 중 11명) 순이었다. 강북구(16명), 금천구(11명), 서초구(40명)는 관람객 전원 모두 1,000원을 냈다.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관람료선택제를 도입한 세종문화회관 측은 이번 결과에 만족해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혹시라도 '(1,000원보다) 값을 더 올리려나'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1,000원을 초과한 관람료를 낸 분이 230명이나 돼 놀랐다"며 "공연 입문자와 서민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은 관람료를 선택할 수 있는 '누구나 클래식' 공연을 올해 4차례 더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