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주 ‘여의도 정치’를 청산하겠다면서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을 총선 공약으로 내놨다. 한 위원장이 정치 기능부전의 원인을 여의도로 상징되는 기존 정치권에 돌려 인기를 얻으려는 수사(修辭)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지만, 어쨌든 판도라의 상자는 다시 열렸다.
충청권에서는 대체로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재탕, 삼탕 공약”이라며 정치인들을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는 냉담한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은 오래된 메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이 안보위기 해소 차원에서 1977~78년에 구상했던 ‘충청권 임시수도 건설안’이 원형인데, 그 20여 년 후 참여정부가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을 통해 실제로 추진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법 위헌결정(2004년) 이후 박근혜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세종시의 성격을 정리하면서 논란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에선 여야 구분 없이 ‘국회를 내려보내겠다’, ‘청와대를 내려보내겠다’는 약속이 못처럼 튀어나왔다. 2017년 대선만 해도 국회 분원 설치를 통한 세종시의 정치행정수도화(문재인), 국회와 산하행정기관 이전(홍준표), 청와대와 국회 이전(안철수) 등 주요 후보들이 모두 관련 공약을 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행정수도에서 ‘행정’을 뺀 진짜 수도, 실질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21대 국회는 국회법을 개정해 12개 상임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 국회예산정책처를 세종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세종시의 위상이 ‘행정중심도시’에서 ‘행정수도’로 높아지는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세종의사당(2031년 예정), 제2집무실(2027년 예정, 대통령 공약) 계획에도 일부 예산이 반영돼 있지만 법적 지위의 불안성, 정치적 변수 때문에 실현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행정수도 건설이라는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기-승-전-결의 국면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지금은 국회와 대통령실 이전을 앞둔 마지막 국면의 입구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국회와 대통령실 이전은 매우 고차원의 방정식이라는 점이다. 예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처럼 시기상조론이 불거질 수도 있고, 정치권은 충청권 표심을 얻으려 추진하는 건 아니냐는 포퓰리즘 논란에 시달려야 할 터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세종의사당 건립 예산 3조6,000억 원) 충청권을 제외하고 이 문제에 무관심한 혹은 다른 지역 국민들도 설득해야 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꺼냈던 2020년 7월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에 대한 찬반 여론은 비등비등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국토균형 발전, 수도권 과밀화 방지라는 행정수도 건설 추진 목적과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집권 세력이 정책 실패의 국면 전환을 위해 추진하거나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는 듯 비치면 백이면 백 실패로 돌아갈 건 명약관화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의 이번 국회 이전 공약은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한 위원장이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발표하면서 ‘서울 개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 여당은 수도권 메가시티 추진으로 눈총을 받았는데, 규제 해제로 서울 개발을 촉진하자는 주장 아닌가. 서울로 사람과 돈이 집중되도록 하는 서울 일극화 정책과 국회 세종시 이전이라는 국토균형 발전 핵심 정책의 충돌을 설명하지 않고 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은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