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인 서울 마포 주공아파트. 중앙난방을 공급한 6층 규모의 아파트를 단지로 구성해 1,000가구를 수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역설적으로 터무니없는 공상이었기에 실현 가능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주택보다 적합한 것은 없을 터. 5·16 쿠데타로 집권한 후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 마포아파트는 당시 경제 상황이나 기술 수준으로 도저히 불가능했기에 반드시 구현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포아파트 1차 준공식에 "이 아파트가 혁명 한국의 상징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축사를 보냈다.
2021년 출간돼 학술 분야 출판상을 휩쓴 '한국주택 유전자' 저자 고(故)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의 '마포주공아파트'를 시작하는 전사(前史)다. 저자는 유작이 된 이번 책에서 권력 이데올로기 프로젝트로 시작된 마포아파트의 시작점부터 1992년 국내 최초 아파트 재건축 신화를 쓰고 퇴장할 때까지 연대기를 낱낱이 파헤쳤다. 전작에서 대한민국 주택사를 집대성한 그가 특정 아파트를 해부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파트 자체가 아닌 이 아파트가 잉태한 주거 규범이었다. 마포 주공에서 출발해 지난 6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한국인의 세계관과 일상을 지배해온, 이른바 '마포 주공아파트 체제'다.
저자는 마포 주공의 역사를 훑어가면서 한국 주택 공급과 아파트 역사의 결정적 대목들을 짚어낸다. 당시 주택 건설 예산이 없어 자금난을 겪던 정부는 마포 주공을 임대 아파트로 만들어 분양했다. 이후 대한민국 모든 아파트 단지가 분양을 전제로 개발됐다. 그리하여 한강 매립지나 강남, 잠실 등 서울 신시가지에 아파트 단지가 등장하고 사람이 몰리며 도시는 거대한 '빗장공동체'로 변모한다. 한정된 도시에 주거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택지를 개발해 주택공사가 직접 아파트를 건설하거나 민간 업체에 땅을 팔아 주택을 공급하게 하는 방식이 더없이 손쉬운 방법이었을 터. 공원, 주차장, 놀이터 같은 필수 기반시설을 투자하는 대신 아파트 단지 건설과 분양으로 대응한 결과 '마당 없는 높은 집'은 한국 주거의 우세종으로 남게 됐다.
1960년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거짓말처럼 등장한 대단지 아파트 마포 주공은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이 아파트를 원형으로 삼아 60년 동안 단지 아파트가 전국을 뒤덮고 수많은 신화를 만들었으니. 이뿐인가. 전체 주거의 65%를 차지하는 아파트 단지는 입시와 교육 체계를 만들어 계층을 재생산하고 개인의 인생, 정권의 명운까지도 쥐고 흔든다. 마포 주공은 30년 전 사라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마포 주공아파트 체제에 산다. "살아 있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맴돌며 미처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 교묘하게 간섭하는" 구시대 발명품에 발목 잡힌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