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자 찰스 멀랜드는 찰리 채플린의 예술가적 정체성이 1940년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기점으로 그의 현실 정치관과 분리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황금광 시대'(1925)와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로 자본주의적 소외와 빈부, 비인간화의 처연한 단면들을 상징과 유머로 보여준 그는 자신의 유성영화인 ‘위대한 독재자’로, 특히 결말부 “세계를 해방하자”고 역설하는 독재자의 5분 연설로 나치즘과 파시즘을 예술적 여과 없이 거의 직설적·선동적으로 고발했다.
불륜 등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가십뉴스에서 빈번히 헐뜯기던 무렵이었다. 그의 반파시즘 정치관은 소련의 노선과 일치했고 현실에서도 그는 미-소 우호관계를 촉구하는 단체 회원들, 공산주의자란 의심을 사던 이들과 각별했다. 1947년 영화 ‘살인광 시대’에서는 자본-물질주의와 전쟁-대량 살상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비판을 토했다. 그는 1920년대 이래 에드거 후버의 연방수사국(FBI)과 곧 이어질 50년대 매카시의 적색 공포시대의 뚜렷한 표적이었고, 시민들 중에도 그를 ‘빨갱이’로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1952년 영화 ‘라임라이트’의 영국 런던 시사회를 위해 9월 18일 출국한 그는 다음 날 재입국 불허 통보를 받았다. 귀국하려면 정치적 입장에 대한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었다. 그는 사실상 정치적 망명지였던 스위스에서 1957년 영화 ‘뉴욕의 왕’을 만들어 매카시즘의 아성 미 하원 비미활동위원회(HUAC)를 조롱했다.
프랑스 정부는 1971년 만년의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이듬해 베니스 영화제는 명예황금사자상을 수여했다.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도 그해 그를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식에 초대했다. 20년 만에 귀향한 82세의 그는 1972년 4월 3일 링컨센터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4K 황금 트로피와 함께 오스카 역사상 최장 시간이라는 만 12분여의 기립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