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작가를, 그 작가의 인생을 사들이는 거다." 미술 컬렉터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 반전(反戰) 사상가 쓰루미 슌스케(1922~2015)가 쓴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는 책 또한 그런 말에 어울리는 책이다.
쓰루미는 명문가 도련님이었다. 아버지 쓰루미 유스케는 후생대신까지 지낸 정계 유력 인사였다. 외할아버지 고토 신페이 또한 대만총독부 민정장관, 남만주철도 초대 총재 등을 지낸 거물이었다. 이런 집안 배경 덕에 쓰루미 스스로도 열여섯 살에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대에 진학해 아서 슐레진저 같은 유명 학자 밑에서 배웠고 그 제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대 일본에서 최첨단의 길을 걸었던 셈.
하지만 1941년 진주만 공습과 함께 미국, 일본 간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쓰루미는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인근 수용소에 갇혔다. 1942년 5월 일본으로 되돌아가겠냐는 미국 정부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국가(일본)는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패배한다. 이 국가의 패배는 나라를 짓밟을 것이다. 그때 나의 나라와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 그때 심정에 대한 쓰루미의 설명이다. 미국이 불편하니 떠나겠다, 얼른 조국으로 돌아가 뭔가 돕고 싶다, 그런 게 아니다. 자멸의 길, 뻔한 패배를 택한 조국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동시에 "무엇보다 '영어 가능자'의 신분으로 패배한 후의 나라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귀축영미(鬼畜英米)' 구호 아래 영어를 비롯,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경멸했다. 외교관처럼 영어를 꼭 알아야 할 사람들조차 몰래 영어를 배워야 할 정도였다.
패전 뒤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로 '미국 만세'를 외쳐야 하는 머쓱한 세상이 온다면 영어 가능자란, 그것도 좋은 집안 출신에 일본 유일 하버드대 졸업생이자 영어 가능자인 그는 '문고리 권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쓰루미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한국식으로 말해 '꺼삐딴 리'가 되진 않겠노라고 패전 이전에 결심한 셈이다. 속내 모를 외부의 제3자가 쉽게 동의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스로도 "우리 집안에서조차 나의 이런 생각은 쉽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써뒀다.
이럴 때 증명은 그저 행동뿐. 실제 쓰루미는 패전 뒤 미군정과 일절 접촉하지 않았고, 그의 행방이 궁금해진 하버드대 동문들이 오히려 그를 찾아 나서야 할 정도였다. 아니, 쓰루미도 행동에 나서긴 했다. 패전 직후인 1946년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 등의 지식인들과 함께 '사상의 과학'을 창간, 반전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맞서다 교수직도 내던졌다.
이 책은 그 쓰루미가 2000년대 들어 7년간 잡지 '도서'에 연재한 글을 모은 회고록이다. 책 제목은 쓰루미 스스로 자신의 시대와 인생을 결산한 한 문장, "나는 팔십오 년의 생애를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에서 따왔다.
일본 귀국 직후 그는 인도네시아 지역 해군으로 근무했다. 영어 단파 방송을 듣고 이를 신문 형태로 재정리해 지휘부에 전달하는 게 업무였다. 그 이유는 처참했다. 일본 정부와 군당국의 발표는 죄다 거짓말이어서 해군 지휘부조차 믿지 않았다. 그러니 정확한 전황 파악을 위해 영어로 된 여러 해외 방송을, 그것도 전황의 비밀이 아군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몰래 들어서 정리해야만 했다.
진주만 공습 이전 미국 내 여러 전문가들이 '에이 설마' 하던 시절부터 이미 전쟁의 발발과 패배를 확신했던 쓰루미에게 이런 현실은 어떻게 보였을까. 이렇게 전쟁할 거면서 조국? 애국? 승리? 코웃음이 절로 났으리라.
우리로 치자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회고록과 비슷한 느낌인데 시대, 인물 등에 대한 좀 더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평가가 돋보인다. 가령 한국에선 내용 텅 빈 스타일리스트라고 욕먹기 일쑤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두고 "그의 책이 아니었다면 2차 대전의 판도를 바꿨던 노몬한 전투에 대해 일본인이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아나키스트 박열의 부인으로 유명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메이지 국가가 만들어낸 학교의 계단에 오르지 않고도 영원에 대한 직관을 풀어냈다"고 언급하는 대목 등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