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수사기관인 유럽검찰청(EPPO)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부족했던 2021년 4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로부터 대량의 백신을 확보했는데, 이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명 '화이자 게이트'로 명명된 이 사건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향후 정치 행보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폴리티코, 독일 베를리너차이퉁 등에 따르면 EPPO는 벨기에 검찰로부터 EU 집행위·화이자 간 코로나19 백신 계약 관련 수사를 인계받았다. 벨기에 검찰은 지난해 초부터 해당 계약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을 가능성을 조사해 왔는데, 이를 더 막강한 권한을 쥔 범유럽 수사기관 EPPO로 넘긴 것이다.
앞서 집행위는 2021년 4월 화이자와 18억 회분의 백신 공동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최소 200억 유로(약 29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당시 전 세계가 백신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EU가 대형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를 문자메시지 등으로 집요하게 설득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계약 직후에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외교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행위·화이자 간 계약 조건은 물론, 계약 체결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집행위가 EU 회원국의 필요량 이상을 구매해 결과적으로는 EU 회원국에 재정적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이에 EU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프레데릭 발당이라는 인물은 지난해 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을 부패, 이해 상충, 업무 방해, 공문서 훼손 등 혐의로 벨기에 검찰에 고발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집행위원장 연임을 노렸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으로서는 EPPO의 정조준을 받는 상황이 난감하게 됐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여성 파워' 부문에서 2022, 2023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유럽 대표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보였던 그는 유력한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EPPO가 수사에 착수한 것 자체만으로도 명예가 실추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 유럽의회 의원인 독일 출신 파비오 드 마시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공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만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