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여제 김연경의 우승 꿈이 또 한 번 물거품이 됐다. 프로배구 여자부 V리그 복귀 후 우승 문턱을 세 번 밟았지만, 모두 한 끗 차이로 삐끗해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흥국생명은 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3~24시즌 V리그 챔피언결정전(챔프전) 3차전에서 현대건설에 세트스코어 2대 3으로 패했다. 5전 3선승제로 치러지는 챔프전에서 1~3차전을 모두 현대건설에 내준 흥국생명은 결국 준우승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프로 첫 시즌부터 '우승컵' 휩쓸었지만... 최근 유독 운 없어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준우승이 가장 뼈아픈 사람은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2005~06시즌 흥국생명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세 번과 챔프전 우승 세 번, 통합우승(정규리그 1위·챔프전 우승) 두 번 등 여러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후 진출한 해외리그에서도 각종 MVP와 우승 트로피를 휩쓸며 세계적인 배구스타로 거듭났다.
2021년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김연경은 선수생활 피날레를 흥국생명 통합우승으로 장식하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프로 데뷔 첫 시즌에 이뤘던 통합우승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이뤄보겠다는 취지였다. 1988년생으로, 배구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김연경의 실력과 체력은 전성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였다.
하지만 유독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20~21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 챔프전 준우승에 그쳤고, 2022~23시즌에는 정규리그를 1위로 마무리해 챔프전에 직행했으나 챔프전에서 한국도로공사에 역전패를 당해 통합우승이 좌절됐다. 올 시즌에도 정규리그에서 승점 1점 차로 현대건설에 선두 자리를 내주며 아쉬움을 삼켰다. 챔프전 우승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마지막까지 내달렸지만, 승리의 여신은 쉽사리 흥국생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제 역할 다했지만 결과는 씁쓸... 다시 은퇴 기로에
김연경은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해결사를 자처하며 고군분투했지만, 매번 '혼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외국인 선수 윌로우와 레이나가 김연경과 삼각편대를 이뤄줄 때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김연경의 '원맨쇼'에 가까웠다. 약팀을 상대로 할 때는 원맨쇼라도 괜찮았지만 강팀과 맞붙을 때는 역부족이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도 시즌 내내 "김연경만 제 역할을 해줬다"는 쓴소리를 내뱉곤 했다.
이제 김연경은 다시 은퇴 기로에 놓였다. 당초 지난 시즌부터 프로 은퇴를 고민했으나 구단 측 요청과 지원 약속하에 1년짜리 FA계약을 체결하며 은퇴 시점을 잠시 미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도 수훈선수 인터뷰 때마다 은퇴 관련 질문이 나오면 "노코멘트하겠다"면서도 "다음 시즌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다"고 털어놓곤 했다. 다만 몇 차례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에 더해 이번 시즌 그가 보여준 여전한 기량을 감안하면 현역 생활을 좀 더 연장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