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정신'과 '부산 역사' 알리겠다는 광주·부산 비엔날레 외국인 감독들

입력
2024.04.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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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오 "비엔날레, 지역적 문맥 세계에 알려야"
피로트·메이 "부산 역사서 해적계몽주의 떠올려"

올해 하반기 한국을 미술 축제의 무대로 만들 양대 비엔날레의 윤곽이 드러났다. 올해 3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30개국 73명 참여작가를 발표했다.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에서 보기'를 주제로 1차 참여작가 10명(팀)을 우선 공개했다. 주제도, 참여작가 면면도 다른 두 비엔날레를 이끄는 감독들은 도시가 품은 역사와 내러티브에 주목했다. 한국을 방문한 니콜라 부리오(59) 광주비엔날레 총감독과 베라 메이(37), 필립 피로트(52) 부산비엔날레 공동감독에게 도시와 예술을 연결하는 법을 들었다.

"광주 정신 잘 대변하려면 새로운 시도 있어야"

"광주비엔날레는 광주 민주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큐레이션을 할 때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둡니다."

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프랑스 출신 부리오 감독의 입에선 '광주 정신' '택시운전사'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그는 광주의 박물관을 찾으며 역사를 두루 살폈다. 그는 "비엔날레는 역사와 현재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믿는다.

부리오는 자신이 주창한 '관계미학' 담론으로 세계 미술계를 이끄는 '스타 큐레이터'다. 프랑스 파리 현대미술 전시관 '팔레 드 도쿄'를 설립해 공동 디렉터를 맡았고, 타이페이 비엔날레(2014)와 이스탄불 비엔날레(2019) 등 다수 국제전시를 이끌었다.

"비엔날레의 역할은 지역적 문맥을 반영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수많은 국제비엔날레를 기획한 부리오의 지론이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로 꼽히는 판소리를 비엔날레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의 고유한 것을 하나의 메타포(은유)로 활용해 그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부리오가 추구하는 것은 '공간'과 '주제'의 연결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전시는 오페라 같은 형식으로 음악적·시각적 형태를 아울러 연결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관람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인간의 집이라는 거주지부터 인류가 뿌리내린 행성까지 모든 형태의 공간이 소리 효과와 함께 재현된다.

"광주 정신을 잘 대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향해 전진하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시 공간을 작가들의 작품을 위한 공간이 아닌 관객, 예술가, 주변의 모든 비인간까지 함께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연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항구도시 부산에서 해적 계몽주의 면모 엿봤죠"

"부두 노동과 이주가 활발한 항구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라는 점 자체가 무척 특별해요."(메이)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처음으로 공동감독 체제로 치러진다. 벨기에 출신 피로트 감독과 뉴질랜드 출신 메이 감독은 부산 원도심의 산비탈에 있는 달동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항구가 보이는 산복도로를 따라 들어선 집집마다 부두 노동자들이 살았고, 먼바다에서 들어오는 배를 보고 뛰어 내려가 일감을 구하는 지역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두 감독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수도의 역할을 하며 피란민과 여러 외국인을 차별 없이 포용한 도시라는 점에서 부산에서 '해적 계몽주의'를 떠올렸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주창한 해적 계몽주의는 얻은 것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해적의 세계를 탈권위적·관용적인 다문화 사회라고 본다. 두 감독은 항구도시 부산의 지역성과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에서 해적 계몽주의를 떠올려 이번 전시의 핵심 개념으로 고안했다.

"큐레이터로서 깜짝 놀랄 만한 실험적인 요소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해적 계몽주의와 부산이 중첩됐을 때 어떤 놀라운 결과물이 나올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피로트)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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