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2,000명 증원과 관련, “더 타당하고 합리적 방안을 가져오면 얼마든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증원 규모에 일부라도 조정 여지를 열어 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2,000명 증원안’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훨씬 큰 공을 들였다. 꽉 닫힌 의정 대화의 문틈을 조금이라도 열어줄 거란 당초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점은 매우 아쉽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 나선 건 의료 차질 장기화로 국민 불안이 증폭되는 데다 불통 이미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여당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있다”며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의료계에 공을 넘겼다.
하지만 유화책이라기보다는 기존 강공책을 고수한 담화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윤 대통령은 51분에 달하는 담화문 상당 부분을 증원안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데 할애했다. 화물연대 파업이나 건설노조 '건폭'에 대한 과거 물러섬 없는 대응도 예로 들었다. 37차례에 걸쳐 의료계와 증원 방안을 협의해 왔다는 점을 구체적 날짜를 들며 일일이 반박하기까지 했다.
의료계 반응은 싸늘하다. 대한의사협회는 브리핑을 통해 “지금까지 발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추가 반박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일부 강경파 의사들은 “이럴 거면 담화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래도 대화의 문틈을 조금이라도 열었다는 건 의미 있다고 본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어제부터 시작된 의대 교수들의 근무시간 단축과 개원의들의 준법투쟁으로 병원 현장은 악화일로다. 정부는 더 열린 자세로 두번 세번 계속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정부 역할이다. 유화 제스처조차 없는 의료계는 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스스로는 과학적인 답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정부의 답안이 비과학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통령이 제안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에서부터 답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