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70%... 사라지는 빌라 전세, 무너지는 주거 사다리

입력
2024.04.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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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2월까지 전국의 빌라, 다세대, 다가구 등 비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70%도 넘어섰다. 빌라는 주로 서민들의 보금자리이다. 전세 보증금은 젊은층의 내 집 마련 종잣돈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젠 그런 주거 사다리도 무너지고 있다.

대부분 전세였던 빌라 시장에서 월세가 급증한 건 전세사기의 영향이 크다.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 경기 수원시와 화성시, 부산과 대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천억 원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들이 속출하며 빌라는 기피대상이다.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찾는다.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강화한 것도 월세화를 가속화시켰다. 공시가격의 150%까지 가능했던 전세보증금 기준이 126%로 낮아지며 집주인은 한도를 넘어선 부분은 월세로 돌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부가 빌라 공시가격을 연거푸 낮춘 데 이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시가격은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빌라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며 공급도 절벽이다. 지난해 연립과 다세대를 포함한 빌라 착공 물량은 1만1,893가구로, 전년 대비 70% 넘게 급감했다. 지역에 따라선 몇 달째 착공 실적이 ‘0’인 곳도 적잖다. 공급난에 집값과 월세가 뛰면서 전체 주택 시장이 들썩일 가능성도 없잖다.

빌라는 개별성이 강해 적정 가격을 산정하는 게 쉽지 않고, 거래가 드물어 투명한 시장을 조성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아파트에 비해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기 일쑤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절반은 비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무너지는 빌라 시장을 방치하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이다. 전세사기를 뿌리 뽑아 빌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 빌라 거주민의 숙원인 주차장 공급과 녹지 공간 확대를 통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모든 국민들이 아파트에 살 순 없고, ‘아파트공화국’도 바람직하진 않다. 빌라 시장을 정상화해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건 또 하나의 시급한 민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