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입문 전부터 주목받은 것은 기성 관료나 정치인과 다른 모습 때문이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국회 대정부 질의,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야당 의원들의 우격다짐에 휘말리거나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모습에 보수층에선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흐트러지지 않은 옷맵시와 '70년대생 X세대' 수식까지 더해져 '꼰대' 이미지에 갇혀 있던 보수를 넘어선 새로운 보수의 등장을 알리는 듯했다.
□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서자마자 한 위원장이 '흑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정치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지 정치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외치더니, 이틀 후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 형수에게 한 발언 등을 거론하며 "쓰레기 같은 말"이라고 했다. 사담 도중 속어나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 동안 대중을 상대로 14차례나 반복한 것은 경쟁 세력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려는 의도가 다분한 선거용 발언이다.
□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연설집회에서 한 지지자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아랍인'이라고 주장하며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발언을 마치기도 전에 매케인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품위 있고 가정적인 사람이자 (미국) 시민이고, 단지 나는 어쩌다 보니 그와 근본적 이슈들에 있어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왜곡된 주장을 하는 지지자의 잘못을 지적하며 오히려 경쟁자를 변호한 것은 보수 정치인의 품격을 드러낸 상징적인 장면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 품격이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하고, 정치의 품격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화법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선판 반전을 노리기 위한 것이라 해도 "5,000만 국민의 언어를 쓰겠다"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식으로 총선에서 이긴다면 다음 국회에서도 실종된 정치의 복원은 물론 품격 있는 정치는 기대하기 어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