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이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거나 지지한 후보들을 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 떨어뜨리겠다며 정치권에 선전포고를 했다.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정부 제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정부 역시 "의료개혁을 흥정하지 않는다"는 강경한 입장이라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의정 간 대화가 시작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임 당선인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관계없이 의사를 도둑놈, 사기꾼, 부도덕한 존재로 프레임을 씌우는 나쁜 정치인들을 겨냥해 낙선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당선인은 전날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의협 손에 국회 의석 20~30석 당락이 결정될 전략을 갖고 있다"며 의사들 표를 모아 총선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를 드러냈다.
기자회견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구체적인 낙선운동 대상도 지목했다. 의대 증원 필요성을 주장해 온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다. 안 전 수석과 김 교수는 각각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16번과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12번을 받았다. 임 당선인은 "이들이 괴벨스식 선동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궤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선거 캠페인'과 관련해서는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국민을 적극 설득하겠다"고 설명했다. '의사 집단행동 장기화로 오히려 의사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질의가 나오자 "이 상황을 색안경 끼고 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협 내부에서 고개를 드는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는 일단 선을 그었다. 임 당선인은 "대통령께 최소한 한 번의 기회는 드리는 게 맞다"며 "이 사태는 대통령 보좌진이 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고, 왜 의사 증원이 필요 없는지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사태를 계속 방치하면 국민 여론이 끓어오르고 의사들에게 남은 선택지도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보좌진에게 책임을 묻고 국가를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 당선인은 정부와의 대화 전제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2차관 파면 등을 내걸었다. 계속되는 정부의 대화 제의도 같은 이유로 "논평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단칼에 거부했다. 향후 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에는 "전공의, 의대생, 교수들 의사를 반영해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임 당선인은 "전공의, 의대생, 교수들이 조금이라도 탄압받으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다만 총파업으로 환자들이 진료를 못 받게 되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도 의료계와 소통을 이어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주요 5대 병원장을 만났고, 조 장관은 대한사립대병원협회 소속 병원장 56명과 대면·비대면 간담회를 가졌다. 지역의료 살리기를 주제로 전문가 토론회도 열었지만 2,000명 증원 철회나 재조정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박 차관은 오전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의료개혁 성패는 5,000만 국민 생명과 직결된다"며 "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어 "특정 직역이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무력화한 악습을 끊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