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였던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32)가 고객 돈 80억 달러(약 10조 원)를 빼돌렸다가 징역 25년 철퇴를 맞았다. 불과 18개월 전만 해도 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였던 '코인왕'이 미국 역사상 최대 금융사기꾼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루이스 A. 캐플런 판사는 이날 뱅크먼프리드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또 110억2,000만 달러(약 15조 원) 재산에 몰수 명령을 내려 피해자들에게 보상토록 했다. 캐플런 판사는 뱅크먼프리드의 뻔뻔하고 반성 없는 태도, 재범 가능성 등을 고려했다며 "그가 미래에 매우 나쁜 일을 할 위치에 있을 위험이 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앞서 뱅크먼프리드는 2022년 12월 △사기 △자금 세탁 △불법 선거자금 공여 등 8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선고된 형량은 공소 사실이 모두 인정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최고 형량(징역 110년)과 검찰 구형(징역 40~50년)보다는 훨씬 낮지만, 뱅크먼프리드 측이 요구한 징역 6년 6개월은 크게 웃돈다. 최근 몇 년간 화이트칼라 범죄자에게 선고된 형량 중에서는 가장 긴 편이라고 NYT는 짚었다.
2019년 4월 FTX를 설립한 뱅크먼프리드는 암호화폐 붐을 타고 한때 260억 달러(약 35조 원) 자산가로 급부상했다. 세계적 금융회사를 창업한 존 피어폰트 모건에 빗댄 '코인계의 JP모건'으로도 불렸다. 각종 광고판과 잡지 표지는 그의 얼굴로 도배됐고, 그는 연예인, 운동선수들과 어울리며 자선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괴짜 선행가'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민낯이 드러난 건 2022년 FTX가 파산을 맞으면서다. 당시 테라·루나 사태 여파로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코인 투자자들이 예치금 인출에 나섰고, FTX도 유동성 위기에 빠져 무너졌다. 당시 FTX가 고객에게 돌려주지 못한 자금 규모는 80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이 돈 대부분이 FTX 계열사 알라메다리서치의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조사 결과 뱅크먼프리드는 알라메다리서치로 빼돌린 '고객으로부터 훔친 돈'으로 호화 부동산을 구매하고, 거액의 정치 기부금 등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뱅크먼프리드의 단죄를 촉구하는 FTX 피해자들은 "FTX 파산 이후 자살 충동을 느꼈다", "정의가 그에게 삶과 비디오게임의 차이를 가르쳐주길 바란다"는 등 내용의 편지 수백 통을 검찰에 보냈다고 NYT는 전했다. 뱅크먼프리드는 항소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판결이 가상화폐 관련 범죄로 기소된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알렉스 마신스키 셀시우스 네트워크 창립자,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공동창업자 자오창펑 등의 향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