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 투자' 전주 국제한식조리학교, 12년 만에 문 닫아

입력
2024.04.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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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학생 수 대폭 줄어
지자체 지원도 중단돼 운영 어려움
전문가 "정부 지원 뒷받침돼야 성공" 
전주대 "식품 분야 시설 활용안 검토"

"한식 조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이곳으로 몰렸죠. 학교가 잘 운영되길 바랐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속상하네요."

전북 전주대 캠퍼스에 위치한 국제한식조리학교의 1기 졸업생 심재호(51)씨는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전주의 한 고급 한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심씨는 "국제한식조리학교는 유명 셰프 등 내로라하는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갖춘 곳이었는데 사라진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허탈감을 토로한다. 임기영(38· 효자동)씨는 "전주는 맛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고, 음식이 특화된 지역"이라며 "세계로 뻗어나갈 한식 요리사를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4일 전주대 등에 따르면 2012년 개교한 국제한식조리학교의 운영주체인 국제한식문화재단은 지난달 말 법인 해산 신청서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제출하고 현재 학교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스타 셰프 육성'이라는 목표로 야심 차게 문을 열었지만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한식조리학교는 농식품부와 전북도·전주시·전주대가 총 사업비 120억 원을 들여 설립했다. 전주대는 본관 4·5층에 강의실 5곳과 조리 실습실 6곳, 요리 스튜디오 등 음식 실습에 특화된 공간을 조성했다. 당시 개교 행사에는 이탈리아와 뉴욕에서 온 세계 스타 셰프와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음식점 대표 셰프, 국내외 특급 호텔 조리장 등이 참석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이 치명타가 됐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30명이 넘던 입학생 수는 2020년부터 7, 8명으로 크게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자체 지원도 끊겼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국제조리학교가 자립할 수 있도록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도비 20억 원과 시비 2억 원을 매년 지원했다.

학생도 줄고 지원금도 끊기자 수업은 차질을 빚었다. 학생 1명당 1개씩 제공되던 식재료를 여럿이 함께 쓰기도 하고, 계약직으로 채용된 교수들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도 달라졌다. 비학위 과정인 데다 교수진 확보가 어려운 점도 학생 유치 걸림돌로 작용했다. 교육과정을 마치더라도 학위 인정이 안 되다 보니 학생 이탈은 점점 늘었고, 해외 유명 셰프 채용도 법무부의 허가를 통과해야 해 여의치 않았다.

국제한식조리학교 2대 교장인 민계홍 전주대 외식산업조리학과 교수는 "설립 초기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글로벌 한식'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식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 의지가 강했다"며 "단체장도 바뀌고 핵심 사업도 바뀌면서 관심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음식 조리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훌륭한 자원을 꾸준히 길러내야 성공할 수 있다"며 "'K푸드'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데다 고용 창출, 해외 수출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커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대 측은 청산 절차가 마무리되면 관련 기관, 지자체와 구체적 활용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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