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을 때부터 신기한 일들이 있다.
➀ 목성과 명왕성이 지구와 일렬이 되면 지구 중력을 약화시킨다. 사람의 체중이 줄어 살짝 뛰면 공중에 떠다니게 된다.
➁ 버거킹은 토마토 양상추 양파 등을 180도 자리를 바꾼 왼손잡이용 와퍼를 미국에서 곧 내놓는다. 140만 명 정도의 왼손잡이 단골을 위해서다.
➂ LG그룹이 비공개로 서울대를 인수한다. 등록금을 2배 올리고 직원감원, 교수연봉제를 실시하지만 경영대 공대 의대를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➀은 영국의 천문학자 패트릭 무어가 1976년 4월 BBC 라디오에 나와 방송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 기사 작위를 받았고 스티븐 호킹 등과 함께 50파운드 지폐에 새겨질 후보가 되었다.) 무어는 "오늘(1일) 오전 9시 47분에 '행성 일렬'이 되면 누구나 공중에 부양한다"고 했다. 해당 시각이 되자 "정말 그렇다"는 수백 통의 전화가 BBC로 걸려 왔다. 버거킹은 1998년 4월 1일 USA투데이 신문에 ➁를 알리는 전면광고를 냈다.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은 ➂을 보도하고 말았는데 2002년 4월 1일 자였다.
이날 대학신문은 만우절 특집으로 한 면을 지어냈는데 진짜라고 여긴 이들이 학보 홈피에 "경거망동을 사과하라"는 글을 올렸다. ➀ ➁도 모두 만우절을 맞아 지어낸 것이다. 이 셋은 유명한 '만우절 쇼'이다.
영국에서는 권위 있는 미디어들이 종종 만우절 쇼로 거짓말 기사를 내보내는데, 지탄받는 경우는 드물다. 평소에 정확한 보도로 믿음을 주어서인 것 같다. 대학신문도 이튿날부터 "웃겨줘서 고맙다" "농담과 풍자가 통하는 사회는 건강하다" "참신하다"는 칭찬이 홈피의 주류가 됐고 반응의 흐름이 논문에 실렸다. BBC에 전화한 한 여성은 "감동적이다. 친구 11명과 같이 있는데 탁자와 함께 떠올라 방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청취자가 화를 내지 않고 만우절 방식으로 응답한 것이다. 버거킹의 광고를 보고 왼손잡이는 물론 오른손잡이들도 매장을 찾았는데 "와퍼는 둥글고 두 손으로 잡는데 무엇이 왼손잡이용일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고 한다.
이 셋은 풍자적이다. ➀은 당시에 충격을 준 책 '목성 효과'를 비웃은 것이다. 이 책은 "행성 일렬이 되면 지구에 충격을 주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 책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지탄을 받았는데 무어도 직접 나선 것이다. ➁는 '소수자 배려'라는 당시 미국의 흐름을 유머러스하게 환기했다. ➂은 '서울대 민영화'라는 당시의 이슈를 반영한 것이다.
풍자는 심각하게 성토하는 것보다 힘이 있다. 같이 "킥킥" 웃는 것만큼 공감을 나누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풍자하는 이가 믿을 만하고, 풍자를 받아들이는 토양이 있어야 풍자가 통한다. 너무 바쁜 데다 누군가와 싸우는 중이라면 오늘이 4월 1일인지도, 만우절인지도 모를 수 있다. 설령 알아도 "만우절이면 만우절이지 왜 거짓말을 해?" 하고 화낼 수 있다.
'지난 정권에선 각료 등이 국민에게 발표하는 통계를 조작했다.' '의사협회장을 지낸 이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정부를 이기기 위해 전공의 수천 명이 환자를 떠났고 의대 교수들마저 치료를 않겠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만우절 쇼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꼭 거짓말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