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병이 4·10 총선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최측근이 맞붙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의 정무실장을 지낸 현역 재선의 김영진 민주당 후보에 맞서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방문규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 수성고 출신 방 후보와 유신고 출신 김 후보 간 대결이 성사되면서 수원의 라이벌 고교 간 자존심 싸움도 펼쳐지고 있다.
수원병은 수원 5개 지역구 중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곳으로 꼽힌다. 보수당 계열의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이곳에서 5선을 했고, 그에 앞서 남 전 지사 부친 남평우 전 의원도 재선을 했다. 국민의힘이 수원의 민주당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교두보로 수원병을 꼽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반면 보수세를 뚫고 재선까지 하면서 지지기반을 굳힌 김 후보는 이번에는 수원 전체 선거를 이끄는 '수문장' 역할을 해야 한다. 실제 수원 5개 지역구 석권을 노리는 민주당은 김 후보 지역구 내에 있는 팔달문에서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8일 '수원 원팀' 합동 출정식을 열었다.
일단 상승세를 탄 민주당 바람과 현역 재선의원 프리미엄까지 등에 업은 김 후보가 8년 만의 수원병 탈환에 앞장서는 방 후보보다 우세한 흐름이다.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3월 25~26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 지지율은 50%로 방 후보(34%)를 앞섰다. 뒤집기를 노리는 방 후보와 우세한 흐름을 이어가려는 김 후보의 신경전은 공식선거운동 둘째 날인 지난달 29일 첫 일정부터 감지됐다.
이날 새벽 6시 30분. 두 후보는 나란히 수인분당선 매교역 푸르지오SK뷰 아파트 경로당 인사로 아침을 열었다. 2020년 총선 이후 매교동 유권자만 1만2,000명가량 늘었는데, 3,603가구의 푸르지오SK뷰 아파트와 길 건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2,586가구) 입주 영향이 컸다. 또 매교동은 30대 인구 비중이 28.6%로 지역구 내에서 가장 젊은 곳이기도 하다. 푸르지오SK뷰 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김정민(37)씨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이다 보니 최근 1~2년 새 이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김 후보가 현직이라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두 후보의 홍보물이나 현수막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방 후보는 국철 1호선 화서역 삼거리 출근인사에 나섰다. 화서주공아파트 등 인근 아파트단지에서 화서역을 이용하려면 꼭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방 후보는 횡단보도 앞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얼굴 알리기에 주력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 8년 동안 팔달은 낙후된 '구도심'이 돼버렸다. 민주당 수원 독주의 종지부를 찍자"며 "완전히 새로운 팔달을 만들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원 출신이지만 공직에만 30년 넘게 몸 담았던 방 후보는 출근인사 후 유세차를 타고 팔달구와 세류1동(권선구) 전역을 돌았다. 캠프 관계자는 "공식 선거운동은 이제 시작"이라며 "체감하는 밑바닥 민심은 여론조사와는 차이가 있는 만큼, 지역구를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돈다는 생각으로 유세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출근 인사 장소로 국철 1호선 수원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세차 위에 올라탄 김 후보는 건너편의 버스환승센터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현역 의원인 만큼 김 후보를 알아보고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띄었다. 유권자들을 향해 김 후보는 "오히려 IMF 때보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들 한다"며 "무책임한 정부가 우리 경제를 망쳤다"고 정권심판론을 부각했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유세차를 쓸 수 있지만, 김 후보는 '걸어서 수원 속으로' 도보 유세를 이어갔다. 동네 구석구석을 도는 밀착 선거운동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은 수원병에서만 네 번째 선거를 치르는 김 후보만의 노하우다. 캠프 관계자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미리 동선을 정해두기보다는 후보가 '오늘은 어디 가보자'고 하는 곳으로 가는 데 '다 계획이 있구나' 싶었다"며 "지역구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김 후보가 지역구 현안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원병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가다. 화서역 서호공원 앞에서 만난 신모(55)씨는 "없는 사람들은 먹고살 돈도 없고 월세 내기도 어렵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뜬금없이 국회를 세종으로 보낸다는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고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차라리 민주당에서 25만 원씩 준다는 얘기가 더 와닿는다"는 여론도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의 입에서 적잖게 흘러나왔다.
또 다른 유권자는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한테는 당장 오늘 저녁은 어떻게 때워야 할지가 고민인데, 있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심각성을 이해 못한다. 기자도 잘 모를 거다"라며 "서울 출퇴근 때문에 수원에 어쩔 수 없이 터를 잡은 외지인도 많은데 얼마나 부담이 크겠느냐"고 했다. 다만 민주당 정책을 향해서도 "서민들 편을 들겠다는 건 좋은데 너무 갈라치기를 하려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의대정원 증원 문제도 민감했다. 이날 새벽 만난 택시기사 김모(64)씨는 "정쟁만 일삼는 것은 너무 시끄럽다"며 "의사 파업 문제라도 누군가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역 앞에서 만난 이모(35)씨는 "한 위원장이 수원을 자주 찾는 것은 그만큼 열세라는 판단이 들어서가 아니겠느냐"며 "방 후보가 수원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동네를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나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