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험악한 분위기였던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화를 나누며 갈등 봉합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스라엘은 미국 측을 만나 라파 진격 의지를 다시 강조했고, 미국은 민간인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간 미국이 라파 지상전에 강경하게 반대해온 것에 비하면 크게 물러선 입장이다.
2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이스라엘에서 미국 의원단과 만나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며 "라파 진격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뒤, 이스라엘과 조 바이든 행정부가 놀랍도록 단결했으나 라파 지상전에 대해서는 양국이 근본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후의 피란처'로 알려진 라파에는 팔레스타인 피란민 약 140만 명이 몰려 있어 지상전이 시작되면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줄곧 이스라엘의 라파 진격을 만류해 왔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라파 진격 의지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라파 진격 계획에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며 갈등 수습에 힘썼다. 이전까지 라파 지상전에 확고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과 달리, '민간인 피해는 막아야 한다'며 요구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5, 26일 각각 백악관과 미 국방부를 찾아 라파 군사작전을 논의했다. 갈란트 장관은 백악관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우리가 하마스를 해체해야만 한다는 (상호간) 이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미국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했음을 시사했다. 이튿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도 미국 측은 라파 공격을 반대하기보다 공격 개시 전 민간인 보호 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은 지난 21일 "라파 지상전은 실수이며, 하마스 격퇴에 필요하지도 않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난 9일 "(라파 지상전은) 레드 라인"(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의 발언으로 라파 진격을 강하게 만류해 왔다. 이에 비추어 보면, 지상전을 전면 반대하는 대신 '민간인 보호'만 당부한 미국 입장은 상당히 후퇴한 셈이다.
다만 라파 진격에 관한 양국의 입장차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양측 생각에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라파 진격) 계획은 공식화하기까지 갈 길이 멀고, 라파의 민간인을 (안전지대로) 이동시키는 납득할 만한 계획도 몇 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WSJ에 말했다.
앞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을 계기로 파열음을 빚었다. 당초 이스라엘은 고위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라파 지상전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25일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거부권 대신 기권을 택해 '휴전 촉구' 결의안이 채택되자 반발한 이스라엘은 대표단 파견을 취소했다. 이에 미국도 유감을 표하며 양국 관계는 살얼음판이 됐다. 다만 이후 이스라엘 측 요청으로 양국은 다시 파견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