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싹 다 운행을 안 할 줄은 몰랐어요. 해도 너무하네요.”
28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성수역에서 만난 직장인 김상윤(48)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씨는 평소 동대문구 신설동 자택에서 강남구 도곡동으로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그러나 이날 새벽 전격 돌입한 서울 시내버스 파업으로 통근버스도 ‘증발’해버렸다. 급히 우회로를 찾던 그는 40분이면 가던 거리를 지하철로 두 번을 환승해 돌아가야 했다.
노사간 임금협상이 틀어지면서 12년 만에 서울 시내버스가 멈춰섰다. 하지만 유예기간도 없이,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버스 이용이 막혀 이날 아침 출근길은 혼란에 빠진 시민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출근시간대 찾은 서울 곳곳의 버스정류장은 눈에 띄게 한산했다. 서울역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대부분 노선이 ‘출발대기’로 표시돼 있었다. 잠실나루역 정류장 역시 차량 위치가 ‘차고지’로 나오며 운행하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전광판과 휴대폰을 번갈아 들여다보다 이내 지하철역 방향으로 뛰어기기 일쑤였다.
전국자동차노종조합연행 서울시버스노조는 전날 오후부터 사측인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임금인상률을 두고 마라톤 협상을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이날 오전 4시 첫차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서울 시내버스 7,382대 중 97.6%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중단했다. 사실상 서울의 버스 대중교통 체계가 마비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이나 마을버스, 셔틀버스 등 대체 교통편으로 몰렸다. 오전 7시도 안 됐는데, 서울지하철 2호선은 이미 만석이 아닌 객차를 찾아 보기 어려웠다. 영등포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버스가 끊겨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20분 정도 걸어가야 해 출근시간을 앞당겼다”면서 “30분 일찍 나왔는데도 평소보다 사람이 두 배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러시아워’가 시작된 오전 8시 전후 서울역에도 지하철을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대기 탑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대신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보며 실시간 교통정보를 확인했다.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는 승객과 이를 만류하는 서울교통공사 직원간 실랑이도 속출했다.
각 자치구가 긴급 셔틀버스 노선을 편성했지만, 이용객이 워낙 많아 이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송파구에서 출근하는 유지은(28)씨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기다렸는데 20분째 만원 버스만 줄줄이 들어와 포기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왔다. 지각은 확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호출이 급증한 데다, 비까지 내려 택시 이용도 여의치 않았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이지현(26)씨는 “30분 동안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간신히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협상 결렬과 파업 결정 모두 새벽 시간에 일어난 탓에 사정을 모르는 일부 시민은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있던 김옥순(69)씨는 “아픈 다리로는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해 평소 버스를 타고 다닌다”며 “파업에 들어간 건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20대 서모씨도 “파업 소식을 모르고 평소처럼 일어났다가 30분 동안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면서 “직장이 집에서 가까워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