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차세대 D램 기술로 떠오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CXL 기술 기반의 메모리 반도체 신제품을 공개하면서다.
CXL은 데이터 연산에 필요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반도체를 한 몸처럼 통합해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을 크게 높여주는 기술이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AI) 구동에 특화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꼽히면서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D램을 여러 개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제품이다. HBM이 1차선이었던 도로를 다차선으로 늘려 많은 차가 빠르게 지나갈 수 있게 한 것이라면, CXL은 거칠고 불규칙했던 도로를 말끔하게 정리해 차들이 충돌 없이 빠르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도체 학회 '멤콘'(Memcon)에서 CXL 기술 기반의 D램인 CMM-D, 낸드플래시와 D램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형 CMM-H 등 CXL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CXL 메모리의 동작 검증(읽기, 쓰기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시험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술 상용화를 위한 제품군까지 공개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사들보다 먼저 CXL 제품을 들고 나온 건 시장 선점을 위한 노림수로 읽힌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부동의 1위지만,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HBM은 SK하이닉스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겼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을 이달부터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의 기술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HBM으로 체면을 구긴 만큼, 신기술인 CXL만큼은 치고 나가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계획인 셈이다.
이 밖에 D램 개발실장인 황상준 부사장은 "12단 5세대 HBM과, 32기가비트(Gb) 기반 128기가바이트(GB) DDR5 제품을 상반기에 양산할 것"이라고 했다. 32Gb는 D램 단일 칩 기준으로 역대 최대 용량이다. 6세대 HBM의 경우 적층된 메모리의 가장 아래층의 버퍼(버퍼는 두 회로 사이에서 전기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분리하는 장치)를 없애 전력소모량 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시장의 대세인 HBM도 기술 혁신을 통해 역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