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검찰, 경찰의 재산공개 대상 고위공직자 중에 가상자산(코인)을 보유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인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당사자로서 이해충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코인'의 '코' 자만 나오면 기피하는 내부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격무와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탓에 코인 투자는 애초 재테크 고려 수단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7일 관보를 통해 공개한 '신규·퇴직 고위공직자 수시재산 등록사항'에 따르면, 법무부, 대검찰청, 경찰청 소속 전·현직 고위공직자 70명 중 가상자산을 보유했다고 신고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법무·검찰은 재산 공개 대상이 검사장급 이상(49명)이고, 경찰은 치안감급 이상(30명)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돌파하며 다시 한 번 '코인 투자 광풍'이 불고 있음에도, 수사기관 종사자들이 코인을 쳐다보지도 않는 이유는 뭘까. 수사부서 경력이 15년이 넘는 한 경찰 간부는 "수사 공정성이 중요한 만큼 가상자산 투자는 생각해보지도 못한다"며 "내부에서도 '코인은 사기'라는 인식이 있어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고위 경찰관도 "총경 때까지는 격무에 시달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는 고민할 여력도 없다"며 "재산공개 대상이 되는 고위직에 올라가면 더 경계해야 해 코인 투자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직 정부 수준의 구체적 투자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도 수사기관 사람들이 코인 투자를 섣불리 할 수 없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 논란 이후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따라 인사혁신처에서 각 부처별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빠르면 다음 달 관련 가이드라인을 조직 내부에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금융위원회 등과 함께 가상자산 규제의 주무부처 중 하나다. '코인 광풍'이 불었던 2018년 1월 당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내에선 최초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거래소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비록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법무부가 코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실제로 검찰은 서울남부지검 산하에 가상자산합동수사단까지 꾸려 굵직한 코인 사기 범죄 등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고위 간부가 재산공개 대상인 코인을 살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법조계 이야기다. 한 현직 검사장은 "가상자산 투자를 하지 말라는 내부 규정은 없지만 수사하는 사람은 언제든 이해충돌의 위험성이 있다"며 "평검사 때는 일부 보유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어도 검사장 등이 되면 주변 시선을 의식해 더 조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검·경 내부에선 돈이 없어 코인은커녕 주식 투자는 생각도 못한다는 푸념도 나온다. 실제로 수사기관 고위 간부 중 본인이 주식에 투자한 경우 또한 소수에 그치는 데다, 그나마 주식 투자를 하는 배우자나 자녀의 재산 내역을 보면 삼성전자와 애플 등 국내외 '대장주' 투자에 나선 경우가 대다수였다.
경찰청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적은 연봉으로 교육비까지 부담하느라 주식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며 "매달 이자 내기도 바쁘다"라고 말했다. 다른 검사장은 "결혼을 잘하거나, 집이 원래 잘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검사들은 주머니가 가볍다"라며 "빚이 늘면 늘었지, 투자할 여력이 안 된다"고 전했다.
한편 검사들을 이끄는 이원석 검찰총장은 재산공개에서 본인과 배우자, 자녀들 명의의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아파트와 예금 등 19억9,7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경찰 조직 수장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본인 명의의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전세권과 예금, 증권 등 13억6,6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지난해 신고액(11억9,300만 원)보다 1억7,000만 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