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멧돼지 ASF 울타리 '부분개방' 연구결과 받고도 1년간 뭐했나

입력
2024.03.26 09:00
울타리 전환 및 부분개방 연구 결과 받았지만
1년간 손 놓는 사이 올겨울 산양만 떼죽음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울타리의 실효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환경부가 1년 전 '부분 개방'을 포함한 용역 결과를 받아 놓고도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대로라면 당장 올겨울에도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떼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ASF 울타리가 동물의 이동을 막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생태 단절과 주민들의 불편을 가져온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ASF 2차 울타리 등이 집중돼 있는 강원 화천, 양구에서만 산양의 약 80%가 죽었다는 보도(본보 3월 7일 보도) 이후 울타리 개방 및 철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 7차례 모니터링을 한 결과 지방도 제453선과 국도 제44선, 미시령 도로를 중심으로 산양 사체가 발견됐는데 이들 도로는 고스란히 울타리 경계와 겹쳐 있다.

이에 환경부는 관련 조사 용역을 발주하는 한편 이달 22일에는 지방자치단체 담당자 등과 간담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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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경부가 이미 지난해 4월 ASF 장기화에 대비해 울타리로 인한 민원제기와 유형, 울타리전환 및 부분 개방을 위한 평가 방안 등을 담은 연구 용역 결과를 받고도 지금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연구는 부분 개방 시범사업 구간으로 경기 연천군과 강원 인제군, 화천군을 꼽았는데 여기에는 산양 서식지 평가 자료, 울타리로 인한 서식지 파편화 정도 등이 반영됐다. 보고서는 "울타리 설치유형별 부분 개방 시 필요비용 및 소요기간 산정을 위해 시범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실제 부분 개방은 방역상 문제가 없는 시점 이후여야 하고, 이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울타리가 촘촘하게 설치돼 민원과 동물의 피해가 큰 경기와 강원 지역의 경우 2022년부터 ASF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고, 중수본에 환경부가 포함돼 있는 만큼 환경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했더라면 산양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거란 비판이 나온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은 "환경부는 민원 유형과 원인, 산양 피해 우려 등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지난 1년간 어떤 관련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부분 개방 등을 환경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해도,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충분히 제안할 수는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환경부가 올해 발주한 용역 연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울타리 효과 분석 및 관리개선 방안 마련 연구'로 지난해 결과가 나온 '야생멧돼지 ASF 차단울타리 실태조사 및 효율적 관리방안 마련 연구'와 제목도 거의 동일하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 결과는 ASF 위기경보 수준이 심각단계에서 해제됐을 때를 가정했다"며 "환경청과 지자체가 울타리 상황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구축을 위한 추가 용역이 필요해 바로 적용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울타리 설치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며 "올해 용역은 민원이 많은 경기와 강원 지역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광역 울타리의 비용편익을 직접 평가하고, 개방 가능한 구간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또 이와 별도로 울타리가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용역을 통해 산양을 모니터랑하고 관리개선 방안에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 22일 환경부가 진행한 간담회에는 어떤 시민단체도 초청받지 못했다. 같은 시간 생명다양성재단과 녹색연합은 'ASF 울타리와 야생동물 이동 저해 문제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 긴급간담회'를 열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환경부는 5년간의 울타리 설치가 앞으로 생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현장을 전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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