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개인 창작자들에게 트위치의 국내 철수 발표는 날벼락이었다. 하루 평균 200만 명 이상 이용하는 트위치는 개인들이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비싼 인터넷망 이용료를 이유로 지난 2월 말을 끝으로 국내 수익 사업을 종료했다. 트위치에서 게임 등 다양한 인터넷 방송을 하던 이용자들은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졌다'며 당황했다.
그러면서 창작자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그들이 트위치 대신 선택한 것은 개인 인터넷 방송이 가능한 네이버의 '치지직', 아프리카TV와 함께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키클롭스에서 내놓은 '퍼블'(Publ)이다. 그렇게 국내에서 퍼블 바람이 시작됐다. 네이버와 아프리카TV는 업력이 오래된 대형 정보기술(IT) 업체이지만 스타트업 키클롭스는 뜻밖의 복병이다. 서울 뚝섬로 키클롭스 사무실에서 창업자인 배인식(56) 대표를 만나 '퍼블 바람'의 비결을 알아봤다.
퍼블은 한마디로 누구나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다. 글뿐 아니라 영상, 사진, 음악 등 다양한 기능을 붙일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인터넷 생방송까지 할 수 있다. 여기에 전자상거래를 위한 결제, 이용자들의 구독 관리 기능까지 있어 쇼핑몰도 만들 수 있다.
퍼블의 인기 비결은 초보자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손쉬운 제작방법이다. 이를 위해 배 대표는 레고 블록처럼 이용자가 필요한 기능을 가져다 조립할 수 있도록 모듈 방식을 도입했다. "인터넷 생방송, 영상, 결제, 공지사항, 온라인 강의, 게시판 등 각 기능들이 스마트폰의 응용 소프트웨어(앱)처럼 모듈로 독립돼 있어요. 이용자가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듯 홈페이지 구성에 필요한 기능을 마우스로 끌어다 놓으면 1시간 만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죠. 홈페이지 구성이 막막한 이용자들은 여러 예시 페이지(템플릿) 가운데 하나를 골라 필요 없는 기능을 빼고 필요한 기능을 더하면 돼요."
'팹'이라고 부르는 기능별 앱은 30종이 나와 있으며 계속 늘고 있다. "여러 앱을 개발해 퍼블 앱스토어에 계속 올리고 있어요. 대부분 앱은 무료 이용할 수 있지만 글꼴 개발업체 산돌이 개발한 글꼴 앱처럼 외부 기업이 개발한 앱은 유료 판매해요. 따라서 인공지능(AI) 등 여러 업체들이 퍼블용 앱을 만들어 올리면 기능이 계속 늘어나죠."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지원해 퍼블로 만든 홈페이지를 해외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전 세계 서비스를 겨냥했어요. 이를 위해 전자상거래 기능에서 결제 통화도 원화와 달러를 고를 수 있죠. 앞으로 스페인어와 중국어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퍼블에 이용자들이 몰린 것은 콘텐츠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창작자들은 트위치에서 사라진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다달이 돈을 받는 구독형과 회원 가입한 이용자들에게만 판매하는 회원제, 각각의 콘텐츠를 따로 파는 개별 판매 방식 등을 입맛대로 선택해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죠."
이용료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로 제공돼 다달이 5,900~9만9,900원을 받는다. "이용료에 유지보수 및 저장장치 비용과 향후 기술 개선 비용이 포함됐죠. 여기에 창작자가 퍼블로 만든 홈페이지에서 콘텐츠나 상품을 판매해 돈을 벌면 수익 창출 수수료를 받는데 이용료가 높을수록 수수료가 낮아요. 수수료는 5~8.5%죠. 30% 수수료를 받는 일부 업체에 비하면 많이 낮죠."
이 같은 편리함과 수익 보장 때문에 퍼블은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트위치 철수 바람을 등에 업고 7,000개 홈페이지가 개설됐다. "트위치의 국내 철수 이후 퍼블로 만든 홈페이지가 월 1,000개 이상 급증했어요. 상반기 중 1만 개가 넘을 것으로 봅니다."
이 가운데 기업이나 유명인들도 있다. 영화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는 퍼블로 만든 홈페이지에서 '맨발의 기봉이' 등 제작 영화를 주문형 비디오(VOD)로 판매하고 있다. 가수 이승기도 연 3만6,000원의 회비를 받는 팬사이트를 퍼블로 개설해 영상 등 유료 콘텐츠를 제공한다. "여러 아이돌 그룹이 팬사이트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에요."
대전 소극장 다함은 퍼블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공연 입장권을 판매했다. "입장권 판매 앱을 붙이면 좌석 선택까지 가능해요. 기존 입장권 판매 사이트에서 표를 팔면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극단이 아닌 판매 사이트가 가져서 팬 관리가 어렵죠. 반면 다함처럼 직접 입장권을 판매하면 고객 DB를 확보해 팬 관리를 할 수 있어요."
또 유명 투자가 존리는 월 5만 원씩 받는 '존리의 부자학교'라는 온라인 투자교실을 퍼블로 만들어 투자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 유튜버 천영록 대표도 수강료 22만 원을 받는 'GPT로 돈 버는 방법'이라는 온라인 강의 사이트를 만들어 1,600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전자책 저자들이 퍼블에 가세하고 있다. "전자책을 만들어서 출판사나 온라인 서점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는 저자들이 늘었어요."
그만큼 영상과 온라인 강의 등 수익화 가능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올리버여행기라는 창작자가 개설한 인스타그램 운영 비법과 쇼트폼 영상 제작법을 소개한 '기똥찬 클래스'는 30분 만에 1억 원 넘게 팔렸어요."
원래 배 대표는 전 세계인이 애용한 영상재생 소프트웨어 '곰플레이어'를 만든 스타 창업가다. 국민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빠져 전국의 대학생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모인 전국대학 컴퓨터연합회(UNICOSA) 회장을 지냈다. 이를 계기로 199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개발자들의 산실이 된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만들었다. 이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로 발령이 나서 소프트웨어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1999년 독립해 벤처기업 지오인터랙티브와 그래텍을 잇따라 창업했다.
배 대표가 그래텍에서 2003년 개발한 곰플레이어는 전 세계에서 1억 명 이상이 이용하며 소프트웨어 한류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컴퓨터(PC)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그는 영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발자다. "2003년 당시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기 힘들었어요. 고사양 컴퓨터가 흔치 않았고 기존에 있던 동영상 재생 소프트웨어들이 다양한 영상 방식을 지원하지 못했죠. 그래서 모든 영상 방식을 지원하는 기술을 개발해 곰플레이어로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넷플릭스보다 앞서서 2006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곰티비'도 개발했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영상을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했죠. 무료 영상들은 광고로 수익을 올렸어요."
이에 힘입어 곰TV는 유명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 개발사 블리자드와 계약을 맺고 세계적인게임대회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2010년부터 독점 중계해 해외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170개국에서 곰TV를 시청했어요. 동시 접속자가 10만 명을 넘어서는 날이 많았죠."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3년 돌연 은퇴했다. 당시 그는 "창업자 1인에 의존하는 회사는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은퇴를 결정했고 국민대 창업지원단에서 객원교수로 일하며 예비 창업가들의 스승(멘토)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물러난 지 3년 만인 2016년 키클롭스를 설립하며 창업가로 복귀했다. 그가 다시 스타트업을 차린 이유는 달라진 환경에서 청년들과 경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만 갖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와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사업하는 청년들과 공평한 아이디어 싸움을 하고 싶었죠."
그는 특기를 살려 K팝 팬들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개인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는 서비스 '스밍'을 만들었다. 스밍은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전 세계 70만 명 이상이 이용했다. "전 세계 K팝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에 대해 수다를 떨며 즐기는 놀이터 같은 서비스죠. 인터넷을 이용해 전 세계 K팝 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해주자는 발상에서 출발했어요."
안정적인 서비스 운용 능력과 기술을 알아본 소프트뱅크 벤처스 등은 일찌감치 키클롭스에 투자했다. 이처럼 퍼블은 영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배 대표가 오래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그는 퍼블을 '개발팀 구독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창작자가 원하는 기능을 대신 만들어줘요. 창작자는 굳이 개발팀을 두지 않아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죠."
앞으로 그는 플랫폼이 아닌 개인 창작자들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본질적인 경쟁력은 기술이 아닌 콘텐츠에 있어요. 지금까지 창작자에게 맞는 서비스가 없어서 플랫폼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됐죠. 개인의 창작력을 기술로 뒷받침해 주는 퍼블 같은 서비스가 있으면 창작자 생태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