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나치 V-2 로켓의 약어 'V'는 ‘베르겔퉁스(Vergeltungs)’ 즉 복수(復讐)’의 형용사형으로, 제공권의 열세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나치 수뇌부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저 무기를 ‘분더바페(Wunderwaffe)’, 즉 전쟁을 끝장낼 ‘기적의 무기(Wonder weapon)’라고 불렀다. 메탄올과 물 액화산소를 연료로 한 로켓 엔진으로 대기권 너머까지 솟구쳤다가 사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약 4층 높이(길이)의 거대 로켓을 피하거나 요격할 수 있는 기술은 당시로선 전무했다. 전쟁에서 점차 밀리던 1944년 9월 6일 프랑스 파리를 조준해 V-2 시험발사에 성공한 나치는 이틀 뒤인 9월 8일 영국 런던에 1,100여 기의 V-2를 퍼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분더바페’는 희망에 근거한 나치의 오산이었다. V-2가 기술집약형 첨단무기인 건 맞았지만 결코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전략무기가 아니었고, 파괴력에 비해 자원과 비용을 터무니없이 삼켜대는 괴물이었다. 실제로 V-2 공격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는 9,000여 명으로 나치가 V-2 제조에 동원한 강제수용소 포로들이 강제노동 과정에서 희생된 숫자(1만2,000여 명)보다 적었다.
나치는 1945년 3월 27일(일부 기록에는 28일) 런던 동부 밸런스 로드(Vallance Road)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V-2 공습 직후 연합군에 의해 마지막 V-2 발사기지를 점령당함으로써 V-2는 역사 속으로 퇴장했고 몇 주 뒤 나치도 몰락했다. 일부 전쟁사학자들은 영국 시민들을 공포로 사로잡던 V2가 역설적으로 나치의 패망을 앞당겼다고 분석한다.
세계 최초 탄도미사일로 평가받는 V-2 로켓을 개발한 베르너 폰 브라운 등 독일 과학자들은 전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탐사프로젝트에 협력했고, 구소련 역시 수거된 V-2를 분해, 분석해 우주 개발에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