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신제품을 일정 기간 빌려서 사용하는 '가전 구독' 서비스가 전자제품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중견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렌털 가전 시장에 생활가전의 절대강자 LG전자까지 뛰어들면서 냉장고, 텔레비전 등 다양한 가전 제품으로 구독 모델이 확산하고 있다.
24일 가전 렌털 업계 1위인 코웨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렌털 사업으로 올린 매출은 3조6,139억 원으로 전체의 91%에 달한다. 2022년 3조4,918억 원(전체 매출의 90.5%), 2021년 3조2,648억 원(89.1%)보다 매출액은 물론 전체 매출에서 렌털 사업 비중도 커졌다. 2022년 말 스마트 매트리스를 시작으로 페블체어(인테리어 기능을 강조한 가구형 안마의자), 안마베드 등 다양한 고가 제품으로 품목을 늘린 게 주효했다.
LG전자는 구독 모델을 내놓은 지 12년 만인 지난해 가전 렌털 업계 2위로 올라섰다. 26일 정기주주총회에 앞서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렌털 매출액은 9,628억 원으로 2022년(7,344억 원)보다 30% 이상 늘었다. 2020년 5,000억 원을 넘어선 이후 3년 만에 두 배가량 성장한 셈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은 중견 업체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초고가 가전제품을 구독 모델로 내놓은 것. 2018년 말부터 냉장고, 스타일러, 안마의자, 공기청정기 등 대형 가전으로 구독 제품을 늘렸고 지난해 4분기(10∼12월)부터는 TV도 구독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5년 이상 장기 구독 매출이 2022년 1,444억 원에서 2023년 4,981억 원으로 크게 뛰었다.
아직 2023년 사업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은 SK매직은 지난해 9월까지 누적 매출 75.9%(6,314억 원)가 렌털 사업에서 나왔다. 2022년 같은 기간보다 렌털 사업 매출이 200억 원가량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전년도 실적(8,198억 원)을 무난하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SK매직은 올해 초 가스레인지, 전기레인지, 전기오븐 영업권을 경동나비엔에 팔고 매각 대금을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 기존 주력 제품에 투자해 렌털 업계 2위 탈환에 나선다.
가전 구독 시장이 느는 건 1인 가구 증가로 값비싼 제품을 한 번에 사기보다는 적은 금액을 다달이 내고 써보려는 요구가 늘고 포화 상태에 달한 가전업계에서 새 시장을 만들려는 기업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GfK가 TV와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 38개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가전 시장은 전년 대비 12% 하락했다(매출액 기준). 2022년(-3%)에 이어 2년 연속 하락세다.
조주완 LG전자 사장 역시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에서 2030년 매출 100조 원 달성을 위한 동력 중 하나로 구독 사업을 꼽으며 "국내 가전 시장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구독 등 새로운 사업 방식으로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