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유럽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도시 중심 광장 한가운데 거대하게 서 있는, 탑이 뾰족한 성당이다. 형태가 독특해서 눈에 띄기도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천국과도 같은 공간의 품에서 잠시라도 여행자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곳보다 더 넓고 높은, 그리고 밝고 찬란한 색으로 가득한 성당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된다. 세상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거대한 고딕성당과 같은 예배공간도 있지만, 혼자만을 위한 작은 마음의 안식처도 있다. 종교 공간이라는 기능적인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현대건축으로 설계한 파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종교 공간을 찾아가 본다.
기독교 예배공간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종교 공간은 시대별 건축양식의 발전과 함께 발전했다. 초기 서양 건축은 자연 재료인 흙으로 제작한 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조나 돌기둥을 이용했다. 신들의 공간인 그리스 파르테논신전도 석재 기둥의 공간이다. 중세 로마네스크 성당은 벽돌이 중심인 조적조 건축물이다. 벽돌 벽이 성당 전체의 구조체 역할을 해야 하니 창을 내기 힘들고 빛이 들지 않아 내부 공간은 어둡고 좁을 수밖에 없다. 이후 나타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는 극단적으로 다른데, 기둥 다발, 아치(Arch), 볼트(Vault·반원형 천장)라는 다양한 구조체를 이용해 초대형의 공간을 만들었다. 기둥 이외의 공간은 커다란 창으로 외부의 빛을 아낌없이 받아들여 천상의 공간을 구현했다. 장미 창으로 대표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빛을 형형색색의 성경책으로 변신시킨다. 이와는 다르게 현대건축은 노출 콘크리트나 나무 등의 건축 재료를 이용해 재료 자체의 특성을 강조하는데, 그 결과 종교 공간의 순수함이 부각된다. 자연 그대로의 날 것과도 같은 원초적 종교 공간의 분위기를 띤 작은 채플(기독교 예배당)이 그 예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고딕 성당은 쾰른 대성당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후기 중세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쾰른에서 멀지 않은 작은 농촌 마을 메허니히에 스위스 건축가 피터 춤토르가 설계한 작은 채플이 있다. 이 마을에 사는 부부가 당시 쾰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건축가에게 요청해 지었다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채플은 15세기 수호성인 클라우스를 기리는 건축물인데, 작은 농촌 마을의 넓은 밀밭에 고인돌처럼 우뚝 서 있는 단순한 큰 돌덩어리처럼 보인다. 동네 농부들이 시공해 완공한 채플은 외형은 크지 않은 오각형이고 내부 공간은 원뿔 모양인데,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천창으로 빛이 어두운 내부로 쏟아져 검은 동굴을 닮았다. 채플은 컴퓨터로 설계하고 프리팹(Prefab·조립식 건물)으로 공장에서 제작돼 시공하는 최신 건축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물결치는 듯한 두꺼운 수제 콘크리트 벽에 난 거푸집 폼타이(콘크리트 시공에서 거푸집을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치수로 시공하는 데 쓰는 기구) 구멍에 유리봉을 넣어 조명과 장식 요소로 쓰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해 건축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혹자는 충남 당진의 신리성지가 연상된다고 한다.
근대건축의 대가인 스위스 태생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생 피에르 성당은 프랑스 리옹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피흐미니에 있다. 피흐미니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라 할 만하다. 중심부에는 성당과 문화센터가 있고, 언덕 위에는 공동주택이 있다. 그중 핵심은 단연코 생 피에르 성당이다. 1970년대 착공했으나 재정 문제로 건설이 중단되고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2006년에 가까스로 완공된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건축물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완공돼서인지 성당의 디자인과 공간은 매우 특별하다. 근대건축 대가의 유작은 현대건축의 주요한 건축 개념과 어휘로 가득하다. 고깔모자를 쓴 듯한 형태의 성당은 외부에서 입구까지 자연스러운 언덕의 경사를 따라 들어 올려졌는데, 현대 건축 구조에서 많이 보이는 '폴딩(Folding·접기)' 개념을 사용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감탄의 연속이다. 벽체 하부의 원색 창으로 들어온 빛이 물 흐르는 듯 성당 내부 전체를 감싼다. 더 놀라운 것은 동쪽 파사드(건물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에 있는 유리로 메꾼 글라스 홀이다. 오리온 별자리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아침 햇빛이 이곳을 비춰 밤에 뜨는 별이 아닌 낮별의 은하수를 만들어낸다.
안도 다다오 이후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일본 건축가는 아마도 구마 겐코일 것이다. 일본 전통 건축 요소와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건축 설계를 보여온 그가 2022년 도쿄 인근 가나가와에 작은 건축물을 세웠다. 100여 년 된 간조인 사원 본당 옆에 깊은 처마를 가진 외부공간과 내부 리셉션 홀로 구성된 현대건축물이다. 처음 대하면 오래된 사찰 바로 옆에 전통건축과는 정반대되는 현대건축이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7m나 되는 깊은 처마이다. 그것도 지붕에서부터 바닥까지 삼나무 루버(널빤지를 비스듬히 댄 창살이나 창 가리개)만으로 처마를 만들어 낸 공간이다. 이 디자인은 현대건축적 디자인이지만 전통건축과 이질적이지도 겉돌지도 않는다. 단순한 건축적 몸짓이 거대하면서도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만든다.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인 리셉션 홀이 펼쳐진다. 벽과 천장이 동일한 재료여서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데, 창이 바닥 부분에 있다. 바닥 쪽에서 빛과 자연이 들어와서 천장과 벽체가 하나로 된 공간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겉보기에는 현대건축의 어휘와 요소로 구성돼 있지만 전통의 공간과 썩 잘 어울리는 새로운 건축의 탄생이다.
서울 연세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숨겨진 건축 보석이 있다. 학교 내 유일한 교회 건물인 루스 채플이다. 루스 채플은 미국 헨리 루스 재단의 기부금과 학교 보조금으로 1974년에 건축됐다. 한국전통건축의 요소인 처마를 근대건축 재료인 콘크리트와 거대한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떠 있는 상태로 만든 보)로 재해석한 지붕이 주된 특징이다. 채플은 언덕 위에 낮게 깔린 캔틸레버 지붕 하나만으로도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한국에서는 매우 드물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서양의 근대건축과 한국전통건축을 결합한 새로운 양식의 한국식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엔 한옥으로 지은 성당과 갓을 쓴 신부가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루스 채플은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알파 오메가 건축'의 건축가 김석재는 근대건축의 주요한 건축적 개념을 바탕 삼아 한국만의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현실이 힘들 때나 위안이 필요할 때 종교는 우리에게 친구가 되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국가가 되기도 했다. 종교 공간은 개인의 기도 공간에서 시작해 소규모의 모임 공간으로 커지고 대형 컨벤션으로 확장되는 등 지역적, 시대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무리 화려하고 거대한 종교 공간도 평소에 굳게 닫혀있다면 진정한 안식처가 되기 어렵다. 오래되고 작은, 그러나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 그래서 조용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분위기에 침잠할 수 있는 장소, 그곳이 진정 종교가 주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일상에 이런 작은 안식처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