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을 시가총액 세계 1, 2위를 다투는 자리까지 올려놓은 핵심 전략은 '폐쇄적 생태계'다. 하드웨어는 자체 개발하지만 그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쓰는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달리 애플은 자체 운영체제(iOS)와 플랫폼(앱스토어 등)을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연동되는 제품군을 완비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애플 제품을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생태계에서 좀처럼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를 생태계 안에 가둬둔다는 이른바 '록인(Lock-in·자물쇠)' 효과가 이렇게 생긴다.
그러나 지금의 애플을 만든 이 전략 때문에 애플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더불어 애플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규제 당국이 21일(현지시간) 동시에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를 정조준하고 나서면서다. 자국에서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은 애플에 특히 치명적이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약 4% 하락했고, 하루 새 시총은 1,130억 달러(약 150조 원)어치 증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의 성공 요인이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법무부는 이날 15개 주(州) 및 수도 워싱턴 법무장관과 함께 애플을 상대로 한 반(反)독점법 위반 소송을 뉴저지주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약 5년간의 조사 끝에 법무부는 애플이 경쟁사들의 서비스를 자사 기기와 연동해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결론 냈다. 즉 애플이 더 좋은 제품·서비스로 승부하기보다는 대체재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의 독점 구도를 구축하고 강화했다"는 것이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애플이 (이를 통해)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6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구체적으로 법무부는 △애플이 아이폰에서 자사 지갑(애플월렛)이 아닌 경쟁사 서비스(구글월렛 등)는 쓸 수 없도록 하고, △아이메시지(무료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 같은 자사 앱은 타사 기기에서 내려받아 쓸 수 없도록 막아왔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폰에 타사 기기를 연동해 쓰는 것도 어렵게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이번 소송으로 얻고자 하는 건 애플의 생태계 개방이다. 대니얼 프랜시스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애플이 다른 회사들과 협력해 그들의 제품·서비스를 아이폰과 더 원활하게 연동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게 법무부의 생각"이라고 WSJ에 말했다. "애플의 시장 지배력을 몰아내기 위한 연방정부의 가장 공격적인 시도"라고 워싱턴포스트는 평했다.
애플은 유럽에서도 비슷한 위기에 놓여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애플·구글의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DMA는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 매출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애플은 올 들어 유럽에서 앱스토어가 아닌 앱 장터와 개발자 웹사이트에서 앱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전면 개방했다. DMA 시행을 의식한 조치였으나, 이런 노력에도 결국 칼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소송과 조사의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 애플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SJ은 미국 반독점 위반 소송의 경우 일단락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소송에 휘말린 것 자체로) 애플이 서비스 사업을 더 성장시키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애플이 이미 유럽에서는 앱 유통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미국 등에서 추가적으로 생태계 개방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이 경우 애플만의 차별성이 약해지고 록인 효과가 반감되면서 삼성전자 등에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