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공격' 후보를 솎아내야 할 이번 선거

입력
202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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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부산으로 자신을 찾아온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미스터 린턴(Mr. Linton)'이라 부르며 영어로 말했다. 인요한 전 위원장은 한국에서 4대째 살고 있으며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2. 김예지 국민의미래 의원이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일상에서 자주 쓰는 '장애를 앓다', '외눈박이 같은 견해', '눈먼 돈' 등 비유 표현의 문제점을 돌발 퀴즈로 내서 비대위원들과 같이 풀었다.

두 장면은 한국 혐오정치의 교과서와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이 대표의 언행에서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 등 외모가 다른 사람은 배제해도 괜찮구나" "그들은 결코 '우리'가 될 수 없군"이라는 메시지를 읽는다. 전라도 태생의, 한국 사회를 위해 선교, 의료, 정치적 기여를 한 집안의 의대 교수인 백인 남성을 이방인 취급해도 괜찮다면,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인 김 의원의 경우는 어떠한가. '장애를 앓다'가 아니라 '장애가 있다', '외눈박이 같은 견해'가 아니라 '편협한 사고방식', '눈먼 돈'이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4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김 의원은 우리가 일상 언어를 예민하게 보는 훈련을 하도록 했으며, 혐오와 비하가 들어간 언어 습관을 고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근 미국 정치에 '낙수공격'(Trickle-down Aggression)이란 말이 회자되었다. 철학자 케이트 맨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비판하면서 썼는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공격적 언행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걸 가리킨다. 원래 낙수 모델은 경영학에서 경영진의 행동을 하위직 직원의 태도 및 행동에 연결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윤리적 리더십, 성실성 등 상사의 긍정성은 낮은 직급 직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반면, 부패, 완고함 같은 부정적 리더십은 부정적 태도를 이끈다는 것이다. 낙수 모델은 사회 학습이론에 기반을 두는데,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역할 모델의 행동을 관찰한 다음 그러한 행동을 모방하곤 한다.

정치인이 약자 혐오감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대중들은 그의 모습을 관찰한 후 그대로 모방한다. 이는 미국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2016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트위터(현 X) 네트워크를 분석하니, 가장 많이 리트윗된 해시태그 중 하나가 '#도널드트럼프'였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대중들을 극우 성향으로 치닫게 선동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런징 루와 소피 옌잉셩의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가 중국과 코로나19를 연계해 트윗을 올릴 때마다 4시간 안에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칭크(chink)를 사용한 인종차별적 트윗이 미국 전역에서 20% 증가했을뿐더러, 같은 날 아시아계 혐오 범죄 신고 건수가 8% 증가했다.

선거가 불과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선거 캠페인에 열일 중인 후보들의 입을 주시하자.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후보들은 진짜 중요한 사회문제를 가리는 사람들이다. 이번 선거만은 낙수공격 대신,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낙수포용이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넘쳐나는 선거가 되기를.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