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베니스 비엔날레 못 간다고 아쉬워 마요"...한국서 맛보는 전시

입력
2024.03.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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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 채택된
듀오 '클레어 퐁텐'의 아시아 첫 개인전과
구순의 조각가 김윤신의 첫 화랑 개인전

외국인, 이민자, 실향민, 망명자, 난민... 공동체 안에서 타자로 명명되는 이들이다. 다음 달 2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개막하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본전시를 총괄하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59) 예술감독은 '이방인 예술가'의 작업을 베니스로 소환해 다양성과 포용, 환대의 가치를 환기한다.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하 비엔날레)은 각국의 예술 역량을 뽐내는 '미술 올림픽'이다.

아무리 미술을 좋아해도 9,000㎞ 떨어진 베니스까지 가기란 쉽지 않은 일. 때마침 한국에서 비엔날레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 본전시에 초청된 김윤신 조각가의 국내 첫 개인전과 작가그룹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의 주역, 클레어 퐁텐


유럽 기반 창작 듀오 클레어 퐁텐(풀비아 카르네발레, 제임스 손힐)은 '레디메이드(ready-made) 아티스트'를 표방한다. 기성품에 예술적 의미를 더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아시아 첫 개인전에서 클레어 퐁텐은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는 문구를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네온사인으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타자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꼬집는 문구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제로 채택됐다. 베니스에는 클레어 퐁텐이 그간 작업한 모든 언어 버전의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가 설치된다.


베니스로 향하는 구순의 한국 조각가, 김윤신

"그냥 내 작업하고 살았을 뿐 베니스 비엔날레가 뭔지 잘 몰라 놀랄 것도 없었어요."

작가들에게 베니스 비엔날레는 꿈의 무대다.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한국 작가 4명 중 한 명인 조각가 김윤신(89)의 말이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생애 첫 상업화랑 개인전인 'Kim Yun Shin'을 여는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처럼 덤덤하게 말했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김윤신은 따뜻한 날씨, 자연, 질 좋은 목재에 매료돼 1984년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알가로보, 라파초, 칼덴, 케브라초, 올리브 등 다양한 나무를 재료로 창작에만 몰두했다.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이 개관하는 등 현지에서 명성을 쌓았으나,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갤러리 전시에는 김윤신의 평생을 조망할 수 있는 작품 50여 점이 소개된다. 1970년대 초기작이 고을 입구를 지키는 정승이나 토템을 연상시켰다면, 최근에는 나뭇조각에 알록달록 채색을 한 '회화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훗날 '동서남북 작가'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늘 같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습니다. 건강이 유지될 때까지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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