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자 핵무장

입력
2024.03.21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우리나라 독자 핵무장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킨 건 미국이다.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추진하기 시작한 건 1969년 미국이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75년까지 주한미군을 완전 철수한다는 입장을 당시 박정희 정부에 통보하면서다. 닉슨독트린은 베트남전 개입으로 막대한 정치ㆍ경제적 부담에 시달린 미국이, 더 이상 아시아 우방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주한미군 철수까지 추진한 거다.

▦ 고 김종필씨는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군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핵무기를 연구해 보자. 미국이 방해해 바로 못 만들면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도 갖춰 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로 7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와 핵 재처리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캐나다로부터 플루토늄 추출용 원자로 도입이 추진됐다. 또 미국의 나이키-허큘러스 미사일을 도입해 발사체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까지 마련돼 핵무장을 목전에 두게 됐다.

▦ 그러자 미국은 강력 반대하며 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종용했다. 또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까지 거론하며 결국 핵무장 추진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그 후에도 우리의 핵무장 기술개발은 극비리에 계속됐고, 박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78년엔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하는 등 양국 간 긴장도 빚어진 흔적이 짙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 집권에 대한 미국의 양해를 얻기 위해 그간의 핵무장 추진 내용 일체를 미국에 보고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했다는 분석도 있다.

▦ 하지만 그 시기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핵무기 기술은 계속 진전됐다. 지금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투발수단을 포함한 핵무장 능력 대부분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엊그제 “차기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하면 미군 철수 가능성은 물론, 한국의 독자 핵무장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격동하는 안팎의 정세 변화가 우리를 독자 핵무장으로 향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