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묘' 감독의 숨은 이야기 "도깨비불 보고 몸져 누운 할머니가..."

입력
2024.03.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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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감독·각본 장재현 인터뷰]
1,000만 관객 초읽기… 24일 도달 가능
“할머니 틀니 사연, 이장 등 제 경험에서 나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중요, 인간만의 특권”

관객 350만 명이 최대치라는 전망이 많았다. 오컬트(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내용)라는 장르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지난달 22일 개봉해 한 달 남짓 상영한 영화 ‘파묘’는 20일까지 952만 명이 봤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다. 극장에 한기가 여전히 감도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취다. ‘파묘’는 이르면 24일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파묘’의 장재현 감독을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손익분기점(330만 명)만 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상영 첫 주말 하루 80만 명이 관람하는 걸 보며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얼떨떨해 했다.

‘파묘’는 풍수와 무속을 소재로 삼으면서 일본 샤머니즘과 군국주의를 불러낸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2015)과 두 번째 연출작 ‘사바하’(2019)에 이어 오컬트물이다. 장 감독은 “오컬트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제가 좋아하고,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오컬트 장인’이라는 수식을 좋아하면서도 경계하기도 한다. 자신의 영화를 “오컬트 장르로 단정짓는 순간 관객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멧돼지 다니던 시골 생활이 큰 영향”

’파묘‘에는 장 감독의 지난 삶이 반영돼 있다. 그는 경북 영풍군 평온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도회지로 나온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북 영주시로 이사하면서부터다. 그는 “학교 가다 멧돼지를 보기도 했다”며 “평온면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영화 만들 때 사용한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산에 밤 주으러 가셨다가 도깨비불을 보고 온 후 일주일가량 몸져 누우신 적이 있고, 동네 분들이 빈집 빗자루를 모아 태운 기억이 있기도 해요.” 어린 시절 평온군에서 목격했던 이장은 ‘파묘’의 씨앗이 됐다. 장 감독은 “묘를 파내면서 관을 들어낼 때 과거가 함께 소환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파묘’ 속 죽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틀니를 몰래 보관하고 있던 소년의 사연은 장 감독의 경험에서 나왔다. 장 감독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틀니를 따로 챙겼다. 한번은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할머니가 불편해 하신다”는 지적을 받고선 틀니를 태웠다. 장 감독은 “할머니는 평범하신 분이었으나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고 뛰어난 이야기꾼이셨다”고 회고했다. 장 감독은 ‘파묘’ 속 무속인 이화림(김고은)의 할머니 유령 장면을 찍으면서 눈물을 흘려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모니터 화면 속 흐릿한 모습만으로도 할머니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었다”며 “화림의 할머니에는 저도 모르게 저의 조모가 투영됐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사랑과 희망, 행복 등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본다. “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만의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장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교회에 계속 나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랑과 희생 같은 걸 계속 언급하고 여전히 소중히 여기는 건 종교”라고 그는 말했다. 장 감독은 “인간 위에 있는 종교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신은 교회에 있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 마음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묫바람 판단 이장 참여 기억 생생”

장 감독은 ‘파묘’ 각본을 준비하며 장례지도사 과정을 밟기도 했다. 장의사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다. 그가 목도한 이장만 열 다섯 차례 정도다. “부슬부슬 비가 오던 날 급작스레 이뤄진 이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후손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묫바람’(묘를 잘못 써서 생기는 일)이라는 판단에 따라 정말 응급수술하듯 한 이장”이었다. 묘를 파보니 관에 물이 흥건히 괴어 있었다. 누군가 수로를 묘지쪽으로 잘못 틀어서 생긴 일이었다. 장 감독은 “당시 느꼈던 감정과 분위기가 ’파묘‘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파묘’에서 여러 상징과 숨겨진 장치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즐기고는 한다. 묘를 파낸 후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땅에 던져주는 ‘넋전’이 100원짜리 동전이라는 점을 주목하는 식이다. 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일제와 정신적으로 싸우는 영화 내용과 맞닿아 있다고 관객들은 해석한다. 보통 넋전은 10원짜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100원짜리 동전이 더 눈에 띄어 사용했을 뿐”이라면서도 “관객이 자신들만의 해석을 할수록 영화의 생명이 더 길어지고 영화 만드는 기쁨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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