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00년' 미국 대신 한국 오는 권도형… "국적기 타자마자 체포"

입력
2024.03.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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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검에 압송해 사건 전모 수사
20만 피해자 민사소송도 이어질 듯

약 5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피해를 투자자들에게 안긴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이르면 24일 한국으로 송환된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권씨가 국내에 도착하는 즉시 압송해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20일(현지시간) 권씨에 대한 한국 송환 결정을 확정했다. 미국 역시 증권사기 등 8가지 죄명으로 권씨의 자국 송환을 요청했지만, 현지 법원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보다 순서상 먼저 도착했다"며 그의 한국행을 결정했다.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권씨 형기는 23일 만료된다. 송환 절차는 그의 형기가 끝난 직후 시작된다. 한국 법무부는 몬테네그로 법무부의 공식 통보를 받는 즉시 구체적 송환 일정과 절차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몬테네그로는 한국행 직항 노선이 없어, 송환은 제3국을 경유해야 한다. 검찰은 몬테네그로 당국 등의 협조를 받아 권씨의 신병을 인계받은 뒤 한국 국적기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할 예정이다. 권씨는 이르면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곧바로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하동우)에 압송될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가상화폐인 테라·루나의 폭락 위험성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해당 화폐를 계속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2년 테라·루나 코인이 폭락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은 50조 원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검찰은 권씨를 상대로 고강도 수사를 진행해 사건 전모를 규명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테라·루나 사태 공범인 한창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구속기소했다. 권씨 등은 테라·루나 코인이 폭락하기 직전인 2022년 4월 출국해 11개월간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한씨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붙잡힌 뒤 지난달에 먼저 한국으로 송환됐다.

권씨가 한국에 송환되면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피해자들의 민사소송도 본격적으로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형사재판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이 인정되느냐에 따라 구제 절차가 달라질 수는 있다.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보느냐, 단순한 돈으로 보느냐에 따라 형사 처벌과 민사 손해배상 절차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 법원은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법원이 사기죄로만 의율하는 경우 피해자들이 권씨 등에 대해 직접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증권 관련 범죄(자본시장법 위반)임이 인정되는 경우,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에 따라 한 사람이라도 승소를 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 전원에게 승소 효력이 미친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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