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낮 1시쯤 경북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 일대. 야산 중턱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산불 발생을 알리는 재난문자가 발송되고 상공에는 진화헬기들이 쉴 새 없이 물을 쏟아부었다. 이날 영덕군에는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동시에 내려져 불길이 빠르게 번질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불은 임야 약 2㏊를 태우고 1시간 40여 분 만에 진압됐다. 지상에선 평소 산불 대응을 위해 훈련을 거듭해 온 171명의 공무원과 진화대원들이 안간힘을 다해 불씨를 끄고, 공중에선 산림청 지휘 아래 5대의 헬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김원동 영덕군 산림과장은 “산림보호담당 직원이 병곡면 일대에서 감시 활동을 하는데 화재 신고가 들어와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며 “바람이 거세 빠르게 번질 수 있었지만 여러 기관이 합심해 빨리 불길을 잡았다”고 말했다.
메마른 날씨에 강풍이 부는 봄철이 다가오면서 자치단체들이 산불 예방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경북 청송군의 경우 1년 전만 해도 이웃 의성군과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헬기를 썼지만 올해는 담수량 1,200L의 중형급 헬기를 단독 임차했다. 대형 산불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선제적으로 방어책을 마련한 것이다. 인구가 2만5,000명도 안 되는 열악한 군 재정상 7개월 임차료 8억 원이 크게 부담된 것도 사실. 그러나 전정빈 청송군 산림보호팀 주무관은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 이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초대형 산불을 겪은 경북 울진군과 강원 삼척시∙강릉시 등 동해안 지역은 전시처럼 초긴장 상태다. 최근 잦은 눈∙비로 잠시 쉴 만도 하지만 이런 시기를 오히려 훈련과 예방 홍보활동 시간으로 삼고 있다. 강릉시 성산면 산불감시원 최돈길(66)씨는 7년 전인 2017년 5월, 어흘리 야산에서 난 불이 양간지풍을 타고 확산돼 화마가 사흘 내내 이어졌던 걸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대관령 기슭에 아직 눈이 남아 있지만 이곳 26명의 감시원과 진화대원들은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예찰 활동을 펼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역대 최장인 213시간의 산불로 축구장 1만9,804개를 합친 면적의 산림이 소실된 울진군은 산불 예방에 사활을 걸었다. 울진군 기성면 울진산림항공관리소에 대형 헬기 3대가 있는데도 담수량 730L 소형 헬기 1대를 임차했고, 울진군 북면 구수곡휴양림에는 40톤의 물을 30분간 뿜어내는 대형 스프링클러인 수막타워 설치에 들어갔다. 해마다 121명가량 유지하던 산불감시원을 145명으로 대폭 늘렸고, 로봇청소기처럼 스스로 이∙착륙해 24시간 산불취약지역을 돌고 오는 최첨단 드론도 배치했다. 여기에 산불전문예방진화대 49명을 뽑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울진군 전역을 누비며 예방 활동을 갖는다. 장대봉 울진 산불전문예방진화대 중부팀장은 “2년 전 산불로 재만 남은 산을 보면 절대 소홀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산림청, 문화재청 등 각 유관 부처와 산하기관도 산불 막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방부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지면 군 사격훈련을 자제하고,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은 농업인들이 영농부산물을 소각하지 않도록 농촌으로 직접 찾아가 파쇄기를 보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설비 주변 산불 위험목을 제거하고, 법무부는 산불방화나 실화자를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 처벌할 방침이다. 김만주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112와 119로 신고가 들어오면 동시에 산림청에 접수되도록 관련 부처와 함께 시스템을 개선해 초동 대응시간을 평균 4분에서 2분으로 단축시켰다”며 “각 자치단체 임차헬기와 산림청 헬기가 합동 진화훈련을 갖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