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자국 반도체 회사 인텔에 "반도체 역사상 가장 큰 보조금"(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을 준다고 발표한 직후 인텔은 자사 홈페이지에 미국 내 투자 계획과 지역별 고용 및 경제 효과 등을 알렸다. 투자 규모를 애초 밝힌 금액의 두 배로 늘리고 새로 짓는 모든 공장에 첨단 공정을 도입한다는 게 뼈대다. 미국의 통 큰 지원 소식에 삼성전자와 TSMC에도 좋은 뉴스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보조금 지급 기준이 예상보다 까다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반도체법이 정한 생산 시설 지원금 390억 달러 중 인텔이 85억 달러(대출 지원 110억 달러·투자 세액공제 25% 별도)를 가져가면서 남은 보조금은 그만큼 줄었다.
인텔이 미국 정부와 합의한 투자계획은 파격적이다. 애리조나 320억 달러, 뉴멕시코 40억 달러, 오하이오 280억 달러, 오리건 360억 달러로 총 1,000억 달러를 5년 안에 투자한다. 주요 외신이 집계했던 애초 투자 금액(최소 485억 달러 이상)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밝힌 미국 투자액은 각각 170억 달러, 400억 달러다.
2022년 제정 때부터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은 미국 기업인 인텔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법은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만들고 연구하는 기업을 돕고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인데 '중국 내 반도체 시설 5% 증산 제한' 등을 지키면서 최신의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미국 땅에 지을 기업은 사실상 인텔뿐이라서다.
인텔은 반도체법이 제정된 2022년 오하이오주에 1.8나노(㎚·1㎚는 10억분의 1m) 초미세공정 시설을 짓는데 200억 달러, 애리조나주 첨단공정 시설 확충에 최소 200억 달러를 쓰겠다고 했다. 목표로 잡은 1.8나노 양산 시점은 2025년 말이다. 양산에 성공하면 TSMC보다 앞선 기술을 갖는다.
반면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TSMC는 최신 반도체 제조 시설을 반드시 대만 본토에 지어 국가 안보를 지키는 방패로 쓰는 '실리콘 실드(shield)' 전략을 택한다. TSMC는 미 반도체법 발표 후 애리조나주에 3~5나노 시설을 짓는다고 밝혔는데, 양산 시점은 2026년이다. TSMC의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의 15%가 3나노 제품에서 나왔다는 걸 감안하면 몇 년 지난 기술을 미국에 주겠다는 뜻이다.
이런 전략은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도 비슷했다. 삼성전자는 1996년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는데 28나노 제품을 생산한다. 반도체법이 통과된 후에는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시설을 더 지어 올해 말 완성품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기술 수준을 공개하지 않지만 고객사인 인공지능(AI) 스타트업 그로크, 텐스토렌트는 "(삼성전자가) 4나노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와 마찬가지로 최신 기술은 한국에 제조 시설을 둔다는 뜻이다.
애초 TSMC와 인텔이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투자액이 각각 400억 달러, 최소 485억 달러로 알려졌을 때 시장이 예상한 보조금 수혜 규모가 50억 달러, 100억 달러로 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정부와 보조금을 협상하면서 인텔은 3개 주에 모두 1.8나노 공정 시설을 짓는다고 약속했다. 뉴멕시코주에는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3차원(D) 패키징 공정을 도입한다. 패키징 공정 역시 양산에 성공하면 업계 최신 기술을 미국 본토에서 구현하는 게 된다.
인텔의 보조금과 투자 규모가 발표되면서 우리 기업이 받을 보조금 규모를 놓고 희망과 우려의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TSMC의 보조금 수혜 규모를 각각 60억 달러, 50억 달러로 예측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는 두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와 제조 시설의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추가 투자 계획을 약속해야 받을 수 있는 액수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