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요즘 그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21일 오후 서울지하철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만난 60대 상인 강모씨는 '비트코인 결제를 하느냐'는 물음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600여 개 매장이 밀집한 이곳은 2017년부터 150곳을 시작으로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현재, 어떤 매장도 비트코인을 지불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상인들은 2019년까지만 해도 간혹 한두 명 정도는 가상화폐로 물건 값을 내다가 지금은 싹 사라졌다고 한다. 강씨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QR코드를 찍는 방식인데, 비트코인 결제를 원하는 손님이 없어 앱도 삭제했다"고 말했다.
최근 개당 시세가 1억 원을 넘는 등 비트코인의 부활 조짐이 완연하다. 덩달아 투자금도 몰리고 있으나, "화폐를 대체하겠다"는 목적에 맞게 성장하는지는 의문이다. 상점들도 효용성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결제 수요가 없는 게 가장 크지만, 불편하고 등락폭이 큰 비트코인의 속성도 한몫했다. 화폐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의 인기는 여전하다. 13일 역대 최고가(7만3,800달러)에 비해 가격이 다소 떨어졌다고 하나 이날도 6만7,811달러를 찍었다. 세계 은시장 가치를 이미 추월했을 정도다. 최근 성장세를 보면 "비트코인이 화폐를 대체할 것"이라는 창시자 사토시 나카토모의 자신감이 괜한 허언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실물경제 속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다르다. 2010년대 후반 국내에도 비트코인 거래 가능 매장이 우후죽순 생겼다. 횟집, 옷가게, 한의원, 피부과 등 업종도 다양했다. 실제 비트코인 결제 가능 업체를 안내하는 '코인맵'을 보면, 서울 80여 곳에서 결제할 수 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기자가 이 중 13곳에 문의하니 비트코인을 안 받거나 사용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매장이 11개나 됐다. 나머지 두 곳도 "비트코인 손님은 거의 없다"고 답변했다.
최대 약점은 변동성이다. 화폐는 기본적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화폐 가치가 수시로 변하고 등락도 심한 비트코인이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철회한 50대 사장 A씨는 "결제를 하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비트코인 가치가 떨어져 음식 값보다 1만 원 덜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7)씨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트코인을 굳이 결제 수단으로 쓰고 싶진 않다"고 했다.
불편한 결제 시스템도 가상화폐를 꺼리는 이유다. 7년 전 이 시스템을 도입한 옷가게 사장 황애연(68)씨는 "2018년 2만 원짜리 티셔츠를 사러 온 손님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했는데 돈이 이틀 뒤에 들어왔다"면서 "입금 여부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등 번거롭기만 하다"고 불평했다.
사실 이용자도 없다. 비트코인 보유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장기적인 가치저장 수단으로 삼는 투자자와 단기 재테크용이다. 보유 목적은 다르지만 두 집단 모두 가상화폐로 물건을 사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다. 6년차 비트코인 투자자 김모(27)씨는 "변동 가치를 활용해 소소하게 수익을 올릴 뿐,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매할 유인이 없다"면서 "가격이 오를 땐 더더욱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비트코인의 미래를 투기 수단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의미를 잃은 지 오래"라며 "자산으로서 힘을 갖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내재 가치는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