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중랑천의 1번 철새 쉼터.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방역을 위해 방진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시민들이 볍씨와 배추 등 먹이를 들고 가자 원앙과 물닭 무리가 몰려 왔다. 새들은 워낙 경계심이 많아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먹이를 두고 자리를 떠날 때까지 마치 맛집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생태 전문가 최종인씨는 "새들이 먹이 주는 때를 알고 기다린다"며 "사람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다가와 먹이를 먹는다"고 전했다. 이어 "초기에는 오전에 먹이를 줬는데 까치, 비둘기 등 다른 새들도 많이 찾아왔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 먹이 주는 시간을 오후로 옮겼다"고 덧붙였다.
원앙 등 중랑천을 찾거나 이곳을 터전으로 삼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시민모임인 '중랑천 새들의 친구'는 지난해 말부터 이달 9일까지 총 25차례에 걸쳐 먹이 주기 등 철새 보호 활동을 펼쳤다. 이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 지난해 12월 말 원앙이 주로 찾던 응봉교 주변에 원앙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모니터링을 하고, 준설과 예초로 새들이 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시작됐다. 준설로 인해 물이 깊어지자 원앙들이 얕은 곳에서만 활동하면서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여섯 군데로 쉼터를 나눠 볍씨와 채소를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중랑천 새들의 친구도 만들어졌다. 함정희 한강 성동팀장은 "새들이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쉼터를 구분했다"며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최소한의 먹이만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1월 성동구청이 유튜브 채널에 "최근 중랑천의 관내 용비교 쉼터 인근에서 원앙 200여 마리가 발견됐다"는 홍보 영상을 올리면서 원앙은 때아닌 관심을 받았다. 이후 형형색색 깃털을 지닌 화려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탐조객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중랑천 개발로 오히려 원앙 수가 줄고 있으며, 원앙의 출현은 '진풍경'이 아닌 원앙이 보내는 긴급구조신호(SOS)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랑천 하류는 서울시 1호 철새보호구역이다. 특히 원앙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겨울철에는 강이나 저수지에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번식기가 되면 산으로 올라가 생활하는 습성과 연관이 있다.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는 "서울숲이 조성되면서 원앙에게 좋은 서식지가 됐다"며 "중랑천은 원앙이 숲에서 번식한 새끼를 데리고 나와 기르기 좋은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원앙의 수가 줄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환경연합이 발간한 2023 시민과학리포트를 보면 2021~2022년 겨울철 단체가 시민들과 함께 중랑천에서 확인한 원앙 수는 1,061마리였지만 2022~2023년 겨울철은 270마리로 크게 줄었다. 한강의 모니터링에서 관찰된 수는 400여 마리로 구체적 수치는 차이가 있었지만 수가 줄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반면 원앙의 수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는 철새보호구역 서식현황 조사 결과 원앙의 경우 최근 5년간 약 300~400마리 내외로 관찰돼 왔으며 2021년과 2022년 하천 정비 공사 등의 영향으로 200여 마리로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1회 조사 결과 451마리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도 올해 초 모니터링을 한 결과 200여 마리로 파악했다며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봤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중랑천 개발이 원앙의 서식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철새 서식구간을 대규모로 준설해 강물이 호수처럼 변하는 호소화가 진행되면서 수면성 오리류가 서 있을 곳이 줄었고 수변에 산책용 덱이 만들어지면서 사람을 피하기도 어려워졌다는 게 한강 측의 분석이다. 환경운동연합도 "하천 정비사업으로 육교, 계단 등의 시설물이 수변에 조성돼 물새류의 은신처가 줄어든 데다 수변 녹지의 제초작업과 벌목, 과도한 가지치기로 먹이자원이 손실됐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도 "중랑천을 따라 운동기구가 들어서고, 나무나 풀숲을 없애면서 원앙이 먹이를 구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서울시가 철새의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면서 원앙이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라며 "다만 원앙이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개체 수는 회복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원앙 등 철새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앙의 서식지와 사람이 활동하는 간격을 넓히고, 다양한 식물을 심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형철 한강 대표는 "시민들이 모임을 만들어 중랑천의 대규모 준설로 쉴 곳이 사라진 원앙들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먹이를 공급함으로써 올겨울을 나는 것을 도왔다"며 "앞으로도 중랑천 새들을 위한 모니터링과 보호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와 성동구도 철새 보호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성동구 관계자는 "조류서식 공간에 차폐식물과 먹이식물을 심고 철새보호구역 보호 및 금지행위 안내판과 현수막을 집중 설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정훈 서울시 푸른여가도시국 자연생태과장은 "중랑천 하류 철새보호구역 내 조류 서식에 대한 위협요인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서식 현황 조사 및 생태계 교란종 제거 등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과장은 "앞으로도 매년 지속적으로 이곳의 철새 서식현황 추이와 생태계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서식 특성을 고려한 종합적 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