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에 혁신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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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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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컴퓨터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오랜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 세계 챔피언 이세돌을 이겼다. 바둑은 체스와는 다르다던 인간 자존심이 20년도 안 되어 또 무너졌다.

딥블루의 성공은 기계학습 덕분이었다. 인공지능 개척자 아서 사무엘은 기계학습을 "기계가 일일이 코드로 명시하지 않은 동작을 데이터로부터 학습하여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알고리즘"이라고 정의했다. 딥블루는 고수들의 게임 데이터를 학습하여 주어진 위치에서 가능한 말의 이동이 결과에 미치는 유불리를 판단했다. 경우의 수가 많아서 일일이 코드로 지시하는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바둑은 체스와 차원이 달랐다.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 때문에 가능한 모든 수를 짧은 시간에 평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알파고는 딥러닝과 강화학습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마치 인간의 뇌처럼 신경망을 여러 층으로 구축하여 승률을 높이는 수를 찾아갔다. 고수들의 기보를 학습하여 일정 수준에 이르자 알파고간의 대국으로 학습하도록 하였다. 잘하면 보상하고 못하면 벌했다. 결국 알파고는 대적할 인간을 더 이상 찾지 못했다.

지난 2월 6일 인천의 한 대기업 공장의 폐수처리 수조에서 작업 중에 7명이 질식하여 1명이 사망하였다. 수조의 출입구에는 경고표지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곳은 '질식위험 공간'이므로 '출입 전 산소 및 가스농도 측정', '작업 중 지속적인 환기, 방독마스크 착용' 등 안전조치를 하라는 내용이다.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졌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독가스 흡입을 막아주는 방독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먼지를 걸러주는 방진마스크를 착용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우리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지켜야 할 사항을 일일이 정해주는 지시적 규제방식의 전형이다. 영국 등 안전선진국은 목표는 정해주되 그 달성 방법, 절차, 재료, 기술 등은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목표기반 규제로 바꾼 지 오래다.

지시적 규제방식은 기술발전과 규제 간에 괴리가 생기고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을 적용하는 혁신을 방해한다. 기업은 규정위반 여부를 따지는 단속을 피하기 위하여 서류작업에 몰두한다. 반면, 목표기반 규제방식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기술 등을 활용한 혁신을 촉진한다. 수행 과정에 일일이 간섭하고 규정위반을 따지고 벌하기보다 기업이 달성한 성과에 대하여 평가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 때문에 서류보다 실질을 중시하게 된다.

사업주의 인식도가 낮고 위험통제의 역량이 부족해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규정을 정하고 감독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환경이 변했다. 작업조건이 다양해지고 그 변화의 속도가 놀랍다. 근로형태가 다양해지고 새로운 위험이 속출한다. 안전관리 방법이 다양해지고 첨단기술 발전이 눈부시다.

안전규제에 혁신이 필요하다. 이 혁신은 안전관리의 주체가 정부나 전문기관이 아니라 사업주임을 분명히 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혁신하도록 알고리즘을 짜야 한다. 정부와 전문기관은 그 과정에서 기술과 재정을 지원하고 잘하는 기업은 보상하고 못하는 기업은 벌해야 한다. 사업주에게 자율을 부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우자, 알파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