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패배로 난징조약이 체결된다. 광저우, 샤먼, 푸저우, 상하이와 함께 닝보(寧波)는 서구열강에 안방을 연다. 예로부터 ‘사업이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닝보 상인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장사에 소질이 있다. 현재 저장성 제2의 도시이자, 중앙 정부의 특별관리를 받는 계획도시다. 전국구 도시인 선전, 다롄, 칭다오, 샤먼과 위상을 견준다. 시내를 벗어나면 고스란히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고진이 많다.
닝보 서남부 닝하이(寧海)현에 있는 전동고진(前童古鎮)으로 간다. 남송 시대인 13세기 무렵 하급관리 동황(童潢)이 업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연달아 세 번이나 점을 쳤다. 풍수지리로도 대길의 징조를 지닌 땅이었다. 가족을 이끌고 이주했다. 사찰 앞에 거처를 마련했다. 사전동(寺前童)이라 불리다가 자연스레 절(寺)을 뺐다. 농경과 학문에 두루 힘쓰며 살아온 동씨 집성촌이다.
명나라 초기에 재상이자 대학자인 방효유를 두 번 초빙해 강연을 펼쳤다. 강남제일유전(江南第一儒鎮)이라 불린다. 명나라 중기에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이 다녀갔다. 정문 앞 거리에 밀가루로 만든 마이빙(麥餅)을 팔고 있다. 씹는 게 부자연스러운 서하객이 두껍다 했다. 앞다퉈 두들기며 눌러서 다시 만들었다. 종이처럼 얇은 샤커빙(霞客餅)이 생겨났다. 새우와 해초가 골고루 섞여 향긋하고 바삭바삭하다.
고풍스러운 저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팔괘의 모양으로 골목과 도랑을 만들었다. 골목 따라 물길을 만들고 골고루 흐르도록 설계했다. 대문과 담장으로 이어지는 돌다리가 많다. 옷이나 그릇, 재료를 씻는 공간이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다닌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요리조리 따라가면 마을 어디든 통한다. 가가조량(家家雕樑), 호호활수(戶戶活水)라는 고진이다. 들보가 화려하고 물이 깨끗한 마을이다.
동씨종사(童氏宗祠)가 보인다. 초청받은 유학자 방효유가 설계를 도왔다. 대문 앞에 화강암 깃대 두 쌍이 세워져 있다. 모두 높이가 1.82m다. 후손이 청나라 강희제 시대 과거를 통과해 거인(舉人)에 올랐다. 기념할만한 일이었다. 왼쪽 깃대를 세웠다. 오른쪽은 청나라 가경제 시대 과거를 거쳐 국자감에 들어간 공생(貢生)을 기념했다. 거인이 공생보다 더 축하할 일이지만, 모두 가문의 영광이라 높이로 차별하지 않았다. 신위를 보존한 영모당에 시례명종(詩禮名宗)이 금빛 찬란하다. 유교의 시경과 예기를 숭상한 조상이란 극찬이다.
혼잡하지 않고 한가롭다. 골목마다 식당과 카페, 공예품 가게가 많다. 유지산(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우산)이 하늘을 잔뜩 가리고 거꾸로 달려 있다. 오색찬란하고 알록달록하다. 여러 색깔이 뒤섞인 채 영롱한 빛을 뿜어낸다. 쏟아지는 햇볕을 막아준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니 우산이 방긋 웃는 듯하다. 비가 살짝 내려 바닥이 흥건하다. 유지산이 물기 속으로 반영된다. 마치 비단길을 밟는 기분이다.
고진 삼보(三寶)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많아 궁금해진다. 세 갈래 길에 조명을 밝힌 식당이 보인다. 보물 세 가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두부다. 물컹한 전통 두부인 노두부(老豆腐), 조미를 첨가해 검은빛이 나고 쫄깃한 향간(香干), 겉은 튀기고 속은 부드러운 공심부(空心腐)다. 맛집인 지미정두부방(知味亭豆腐坊)을 찾는다.
문 오른쪽에 쓴 한삼걸문향하마(漢三傑聞香下馬)가 재미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운 삼걸이 등장한다. 무장 한신, 책사 장량, 승상 소하다. 셋이 길을 가다 향기가 너무 좋아 말에서 내렸다는 말이다. 역사 인물이 검증했으니 더 말할 필요 없다. 이름난 술이 없어 약간 서운하다. 왼쪽에 주팔사지미정차(周八士知味停車)가 대련을 이루고 있다. 주문왕(周文王)이 심혈을 기울여 물색한 인재 여덟 명이 있다. 요리 맛 때문에 가던 발길을 멈췄다. 신이 내린 요리라는 자랑이다. 멈출 정(停)과 발음이 같은 정자(亭) 같은 식당이다.
어두워졌다. 조명을 밝히니 이동이 쉽다. 도랑 바닥에도 조명이 스며든다. 새파랗게 빛을 뿜어내는 모습이라 잠시 걸음을 멈춘다. 물이 본디 파란색은 아니다. 은은한 에메랄드 같은 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가끔 보이는 홍등도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흔하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오늘밤 꿈은 동심의 어느 시절을 다닐지도 모른다.
닝보 동남부 샹산(象山)현에 있는 석포어항(石浦漁港)으로 간다. ‘굳건하게 저장의 바다를 지킨다’는 위진절양(威鎮浙洋)이 걸려 있다. 이중 구조로 만든 옹성이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해안 방어를 위해 관청을 설치하고 성벽을 쌓았다. 군대가 주둔하고 주민이 늘었다. 6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어촌 고성이다. ‘중국문화답사기’로 유명한 작가 위추위가 ‘살아있는 고진’이란 감상을 남겼다. 고기잡이 선박을 위한 항구 마을이다.
왜구 근거지 규슈에서 조류를 따라 남하하면 직선으로 900km다. 침범이 잦았기에 고성이 제대로 자리 잡은 셈이다. 깃발을 휘날리며 왜구와 전투하는 벽화가 생생하다. 성벽을 오르니 척계광이 바다를 향해 늠름하게 서 있다. 명나라 중기인 16세기 동남 해안을 안정시킨 항왜(抗倭) 장군이다. 평생 군인으로 산 민족 영웅다운 자태다.
고성은 서민 주거공간이다. 1,300m에 이르는 골목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아치형 월동문(月洞門)이 5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돼 있다. 봉화장(封火牆)이다. 불이 번지지 않도록 돌로 막은 담장이다. 목조건물 사이에 차단막을 세운 지혜다. 왜구나 도적의 침공에 대비하는 기능도 있다.
군사시설이고 항구이자 상업이 번창했던 마을이다. 봉화장에 큼지막하게 쓴 대개춘(大皆春)이 보인다. 명나라 말기에 설립한 약국인데 민국시대에 인기가 많았다. 2층에 있는 아가씨가 바구니를 아래로 내리고 있다. 모형으로 제작한 조람(吊籃) 풍속이다. 의사가 처방 후 약을 바구니에 넣어 내리면 환자가 받아간다.
16세기 중엽 설립한 원생전장(源生錢莊)이 있다. 마당 어항에 거북이가 노려보고 있다. 동해 용왕의 아홉째 아들로 용귀(龍龜)라 한다. 장수와 부귀를 상징한다. 동(銅)을 먹으면 금(金)을 토하고 철(鐵)을 먹으면 은(銀)을 토한다는 전설이다. 동전이 수북하게 가라앉았다. 동전을 던져 머리에 올리면 행운이 따라오고 등에 올리면 백세까지 장수한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비단옷을 팔던 굉장주장(宏章綢莊)이 있다. 아리따운 맵시를 뽐낼 옷이 많이 진열돼 있다. 매무새를 더욱 빛나게 하는 매듭도 있다. 600여 종류, 1,000개에 이른다. 매듭에도 이름이 있다. 제비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다는 비연전시(飛燕展翅), 매화가 향기를 뿜어낸다는 매화토향(梅花吐香), 금빛 물고기가 꽃을 감상한다는 금어상화(金魚賞花), 꽃이 활짝 피고 달이 둥글다는 화호월원(花好月圓)을 살펴본다. 꽃단장에 숨결을 돋게 하는 매듭이다. 여인네 몸매로 다가가는 상상의 손길은 죄가 아니다.
속내 쓰린 재흥연장(栽興煙莊)도 있다. 청나라 말기 아편을 피우던 장소다. 다양한 형태의 담뱃대를 전시하고 있다. 양귀비를 수확하는 장면도 있다. 항구여서 쉽게 아편이 유통됐던 듯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아편 소굴이다.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아편 피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아름다운 꽃(美麗的鮮花)이 사망에 이르는 함정(死亡的陷阱)이란 문구가 유난히 섬찟하다.
시랑부(侍郎府)로 간다. 정삼품 벼슬인 시랑은 오늘날 차관에 해당한다. 명나라 초기 형부시랑을 역임한 유사길의 고거다. 여섯 황제를 섬긴 원로다. 청렴한 관리라 가능했다. 관정당(觀正堂)의 정기(正氣)에 또렷이 묻어난다. 머나먼 바닷가 출신이 고관대작에 올랐으니 대단하다. 오랜 역사만큼 잘 어울리는 인재라 할만하다.
닝보 서북부 츠시(慈溪)시에 있는 명학고진(鳴鶴古鎮)으로 간다. 당나라 현종 시대에 처음 조성된 고진이다. 우구고가 진사에 급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애석한 마음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자(字)가 고향의 이름이 됐다. 이세민을 도운 공신 중 한 명인 우세남의 손자였기에 가문의 기대가 컸다. 봉긋한 돌다리 위로 학이 비상하는 벽화가 나타난다. 요절한 인재가 학으로 환생해 울음을 떨구며 훨훨 날아가는 듯하다.
동해안으로 흘러가는 동강(東江)이 지나고 주변에 호수도 있다. 도랑이 실핏줄처럼 마을을 헤집고 있다. 강남 수향의 면모가 엿보인다. 하얀 담장과 검은 기와 건축물도 많다. 담장은 높고 골목은 미로다. 중심에 위치한 은호(銀號)로 간다. 청나라 후기 베이징에서 이주한 심씨 고택이다. 재물로 공명첩을 샀다. 은행이기도 했고 지금은 객잔으로 개조했다. 대문에 운저분화(雲渚分華)를 새겼다. 구름(雲)과 섬(渚)은 은하(銀河)다. 광채(華)를 나눈(分) 은하수 예찬인 이유가 있다.
청나라 광서제 시대 과거를 통과했다는 낭보를 받았다. 일필휘지로 새겼다.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낭보를 적은 종이와 성지(聖旨) 비석이 있다. 옥새가 찍혔으니 감격이 하늘로 치솟았다. 재물로 획득한 지위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깔끔하게 정돈된 장식과도 궁합이 맞는 품격이다. 마을 최고의 객잔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부를 축적해 가옥을 번듯하게 지었다. 15칸 건물로 1,855㎡에 이른다. 높은 지붕에 마두장을 세웠다. 휘주 상인의 전통 건축 양식이다. 지붕은 검은 기와로 덮고 벽은 회백색이다. 낡은 담장에 이끼가 달라붙고 사람들 낙서도 보인다. 골목을 걸으니 천년 세월의 흔적이 스멀스멀 따라오는 듯하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불어오는 소리도 들린다. 고진이 건네는 묵직한 장맛이다.
가래떡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넨가오(年糕)다. 흰 떡이 많고 노랗거나 녹색, 보랏빛도 보인다. 명학고진을 대표하는 간식으로 유명하다. 곡창지대라 전국이 다 알 정도로 맛이 좋다. 떡을 테마로 축제를 열기도 한다. 볶음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떡을 얇게 썰어 편을 만든다. 솥에 소금을 넣고 함께 볶는다. 편을 꺼내 고기와 채소, 버섯을 넣고 양념을 한다. 옌차오넨가오(鹽炒年糕)라 부른다. 도랑에 앉으니 떡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 고진에 가면 향수를 부르는 맛이 있다. 그래서 멋진 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