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조지 오웰은 절반만 맞았다"던 백남준...그도 절반만 맞았다

입력
2024.03.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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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학고재, 백남준 1990년대 작품 3점 출품 그룹전 개최

#1. 집집마다 24시간 켜져 있는 '텔레스크린' 화면. 독재 정당의 선전 영상만 흘러나온다. 이 스크린은 집 안의 영상과 음성을 수집해 거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조지 오웰이 1947년에 쓴 소설 '1984'에서 그린, 1984년 빅브라더 사회의 풍경이다.

#2. "파리에 있는 빌레씨를 불러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1984년 1월 1일 미국 뉴욕의 사회자가 5,833km 떨어져 있는 프랑스 파리의 사회자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 전 세계 2,500만 명이 시청한 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한 장면이다. 기획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었다.

백남준은 이 쇼로 조지 오웰에게 "오웰,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오웰이 감시·통제의 도구로 그린 TV와 위성을 만남과 소통을 위한 기술로 제시하면서다.

"오웰,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는 관객을 40년 전 위성 생중계 쇼 한복판으로 소환한다. 설치된 크고 작은 TV 스크린 5개에는 당시 쇼의 주요 영상이 동시 상영된다.

영상 속에서 밴드 '오잉고 보잉고'는 노래 '일어나 1984년이야!'를 부르고,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은 텔레비전 모니터 3대를 쌓아 올려 만든 'TV 첼로'를 연주한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의 사회자들은 서로를 향해 술잔을 들어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오웰이 기술 네트워크를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감시망으로 봤다면, 백남준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만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낙관했다.


"백남준, 당신 역시 절반만 맞았다."

인터넷의 초기 개념을 최초로 구상한 사람이 백남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4년 그는 '정보 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는 전시 '함(咸):Sentient Beings'에 출품된 작품 3점을 통해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훨씬 전부터 모든 세계가 평화롭게 연결된 지구를 꿈꾼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약 2,645㎡ 공간의 벽에 64개의 TV 모니터가 부착돼 있다. 벽을 따라 'V'자와 거꾸로 선 'V'자를 반복하는 모니터 배열이 의미하는 것은 '월드 와이드 웹(WWW)'. 즉, 인터넷 세상이다. 백남준이 말년에 심취했던 '주역'에서 64괘는 천리와 인간사의 총합을 의미하는데, 그는 인터넷이 다가올 인류사의 추동력이라고 믿었다.

첨단기술을 통해 백남준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평화와 평등이었다. 축구공을 연상시키는 설치작품 '구-일렉트로닉 포인트(1990)'는 냉전 종식 후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제창한 세계 화합의 가치를 기린다. 사람의 눈, 코, 입을 브라운관과 네온, TV 부품으로 형상화한 '인터넷 드웰러(1994)'는 인터넷으로 지식정보가 보편화돼 인류가 평등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보여준다.

2024년을 사는 사람들은 백남준이 상상한 미래가 터무니없이 낙관적이라며 "백남준, 당신 역시 절반만 맞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생전의 백남준이라면 이런 반응에 어떻게 답했을까. 온갖 방송 사고 탓에 엉망으로 끝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직후 그의 한마디가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실패한 건 중요하지 않아요. 실패해서 더 흥미롭죠. 최대한 철의 장막 너머에 닿으려 애썼고 우리의 위성 TV는 수백만 명에게 닿았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백남준:달은 가장 오래된 TV' 중에서)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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