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요즘 많이 억울할 것 같다. 처장 공백이 계속되며 임명권자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던 차에, 갑자기 대형사고를 친 원흉으로 지목됐다. 공수처 피의자가 하루아침에 특명전권대사가 돼 출국해버린 이종섭 호주대사 사건에서다.
사태는 민심을 예측 못 한 대통령실의 안이함에서 시작됐다. 진짜 뭐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선거 앞 이런 자충수는 ‘안이함’이 아니고선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용산은 공수처를 탓한다. 안보실장의 SBS 인터뷰를 보자. “공수처가 도주 우려 없는 전직 장관에게 출국금지를 걸었다. 출국금지를 계속 연기하면서 조사는 안 했다. 공수처 수사가 늦은 게 문제였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용산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애초 피의자임을 알고 임명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대사는 지난해 9월 공수처에 고발됐고, 최근까지 한번도 조사를 받지 않았다. 임명 고려 시점에 ‘법률 리스크’가 살아 있었다는 얘기다. 리스크를 알면서 강행한 쪽이, 책임을 수사기관에 돌리는 모양새다.
대통령 인사권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책임에서 자유로운 권한은 없다. 누구를 공직에 기용할지는 임명권자의 자유지만, 그에 따르는 후과는 그가 감당할 몫이다. 사실 ‘인사 실패’라는 사건의 본질에 비하면, 출국금지나 소환통보 같은 수사절차 논란은 매우 부차적이다.
공수처가 어쩌다 실패한 조직이 됐는지, 왜 얻어맞기만 하는 기관이 됐는지, 그 책임을 따질 필요도 있다. 공수처는 총체적 난국이다. 처장이 퇴임하고 간부들이 줄이어 떠나면서 ‘처장대행의 대행의 대행’까지 나왔다. 구속영장 하나 받아오지 못했던 민망한 수사력도 문제다.
기관을 만들어만 놓고 수사할 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건 전 정부 책임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를 검찰개혁의 대표 실적으로 홍보하기만 했을 뿐, 정작 공수처가 검찰과 제대로 경쟁하도록 할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엔 소홀했다.
윤석열 정부도 파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 정부는 다른 이유로 수사력 확충에 관심이 없었고, 처장 후보를 추천받았음에도 인선을 하지 않으며 지휘부 공백을 방치하고 있다. 조직도 완비하지 못한 공수처에 ‘신속 수사’를 바라는 건 무리다.
예전 칼럼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검찰의 진짜 힘은 기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소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검찰이 진실을 외면하고 소극적으로 기소하거나 아예 기소하지 않으면, 어떤 국가조직도 사후에 바로잡긴 어렵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졌던 순간은 대부분 검찰이 ‘제 식구를 감쌌다’거나 ‘정권의 비위를 덮었다’는 의혹이 드러난 때였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움찔하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대안조직이 바로 공수처라는, 사회적 기대 속에서 이 조직이 출범했다. 이런 공수처의 무능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시스템 실패의 책임을 이 조직에 돌리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안타까운 점은 공수처의 원활한 운영을 도와야 할 주체 모두가 공수처의 실패를 속으론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의 공수처 폄훼는 특정 기관의 불행이라기보단, 이 나라의 올바름을 지탱해야 할 정의구현 체계 전체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기울어진 시스템을 바로 세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지금의 ‘공수처 탓’은 손가락 방향이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