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17일(현지시간) 실시된 2024년 러시아 대선은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유권자 77.4%가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그가 얻은 표는 무려 87.3%. 2018년 대선 때 얻은 최고 득표율(76.7%) 기록도 갈아치웠다. 그러나 대선을 둘러싼 미심쩍은 정황들로 인해 '부정선거' 논란도 적지 않다. 푸틴이 보여준 높은 인기는 과연 실체에 부합할까.
선거의 투명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은 여럿이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의뭉스러운 점이 많았다. 전쟁을 반대하는 후보 두 명은 서류 문제로 출마도 못 했고,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대선 후보 3명은 친(親)푸틴 인사이거나 존재감이 미미한 들러리였다.
또 이번 대선은 처음으로 하루가 아닌 사흘간 투표가 진행됐고, 투명 투표함에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자투표도 도입됐다. 독립 선거감시단체 골로스는 "밤새 투표함이 조작될 수 있고 전자투표는 감시가 불가능하다"며 "이번 대선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투명성이 떨어지는 선거"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선거 과정에서도 투표 강요와 비밀투표 위반 논란이 일었다.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투표함을 들고 집집마다 방문해 투표를 강요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러시아 연구가 마크 갈레오티는 "부정이 없었어도 푸틴 대통령은 60%를 득표해 쉽게 이겼을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30년간 60% 이상을 유지했으며 2월에는 86%를 기록했다.
인기의 일부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서방의 비판이 러시아인들을 결집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레바다센터 조사 결과,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60~70% 수준이었으나 2022년 2월 개전 이후 급등해 8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알렉세이 레빈슨 레바다센터 대표는 "러시아인들은 부분적으로 선전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내적 신념에 따라 러시아와 서방의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자신이 축구 경기에 참여한다고 상상하는 축구 팬과 같다"고 로이터에 설명했다.
'집단적 동조'가 작용했다는 진단도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22년 레바다센터와의 연구를 토대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상당 부분은 '그가 인기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고 분석했다. 지도자의 인기는 그의 유능함을 증명하거나 그에 대한 지지가 '올바른 의견'이라는 신호로 읽혀 동조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1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푸틴 지지 행사'가 전국에 중계된 이유는 "푸틴 대통령 지지가 '애국적이고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노아 버클리 더블린 트리니티대 정치학 교수는 인기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면 지지 역시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고 NYT에 설명했지만, "그런 일이 조만간 (러시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