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가전과 '어색한 관계'다.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과 TV 등이 필수 제품이긴 하지만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는 젊은이들과는 거리가 먼 '부모의 영역'이다. 거대한 제품들을 잔뜩 모아놓은 '전통적' 가전 매장은 더더욱 갈 일이 없다.
LG전자는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가전 매장 '베스트샵' 위층 사무실을 들어냈다.
이 자리는 대형 가전제품 대신 여러 대의 소파와 커피숍, 강의 공간, 포토 부스가 차지했다. 젊은 세대와의 '어색함'을 깨기 위해 LG전자가 마련한 '그라운드220'은 누구나 편하게 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한다.
2일 LG전자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그라운드220 앞에 다다르자 반긴 것은 영국의 일러스트 작가 린다 바리츠키가 디자인한 그림으로 꾸며진 벽면이었다. 화려한 채색과 산만하게까지 느껴지는 수없이 많은 꽃, 별, 하트 모양 사이로 LG전자의 의류관리가전 '스타일러'와 '슈케어', 노트북 'LG 그램', 식물생활가전 '틔운 미니' 등이 숨어 있었다.
이날 그라운드220에서 만난 구지영 LG전자 CX센터 CX전략담당 상무는 "기획 단계부터 멀리서 봐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바깥 모습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서 "매장이 아닌 예술적 공간처럼 보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의도는 적중한 듯 보였다. 문 앞에 서성이는 동안 방문객 몇몇은 스마트폰을 들고 외벽 사진을 찍고 갔다.
바깥 구경을 접고 2층에 올라갔다. 그라운드220에 가면 데스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공하는 제품의 단위는 개별 물건이 아니라 '루틴(경험)'이다. '루틴'은 현재의 청년 세대가 원하는 "짧지만 확실한 성취"를 뜻한다. LG전자가 청년 세대의 생각과 관심거리를 귀담아듣기 위해 선발한 'LG크루'의 조언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웹툰이나 영화 등 영상을 보고 싶다면 '무빙 무비'라는 루틴을 고른 뒤 이동식 스크린 '스탠바이미'가 있는 좌석에서 블루투스 이어폰 '톤프리'를 끼고 원하는 만큼 넷플릭스·티빙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해 본 루틴은 '크리에이티브 컬래버'. 올해 초 출시한 노트북 'LG 그램 프로'의 인공지능(AI) 연산 기능을 활용했다. ①그램 프로에서 이미지 생성형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을 실행해 '미국 만화 스타일로 도심 강변 풍경'을 그려달라는 명령어를 입력하자 ②노트북은 빠른 속도로 기대했던 그림을 보여줬다. ③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곧바로 연결하는 '그램 링크' 기능을 활용해 이미지를 내려받는 것으로 루틴은 끝난다. ④이 이미지를 티셔츠에 인쇄해 '커스텀 티셔츠'까지 만들어보는 데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현장에서는 톤프리나 가방 형태의 스크린 '스탠바이미 고' 등을 빌려 소파에 앉아 자유롭게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따뜻해져 본격적으로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시기가 되면 매장 뒤편 테라스나 더 나아가 양평 유수지 생태공원으로도 빌린 제품을 들고 나갈 수 있다. 아예 옷을 갈아입고 조깅을 하러 나갈 수 있는 루틴도 준비돼 있다. 구지영 상무는 "고객들이 넓은 공간에서 2시간 이상 마음 편히, 눈치 보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라운드220에서 LG전자의 제품은 조연이다. 매장 내에서도 'LG전자'라는 회사명 대신 '라이프스 굿'이라는 구호를 더 많이 내세운다. LG전자와 그다지 관계가 없어 보이는 포토부스도 마련돼 있다. 최근에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생네컷'과 비슷한 형태다. 그라운드220을 방문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인증샷을 남기고 기념으로 ID 카드도 인쇄해 간직할 수 있다.
돈을 내고 빌리는 방식 대신 포인트 개념을 도입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용자들은 그라운드220의 전용 모바일 웹사이트에 가입하면 최초 2,000포인트를 받고, 시설을 쓰거나 단체 교육 프로그램을 예약하거나 기념 상품(굿즈)을 구매할 때 사용한다. 체험을 완료했다는 리뷰를 적어 올리면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 구지영 상무는 "이용자는 포인트를 쌓아 가는 재미를 느껴 재방문을 할 수 있다"며 "우리로서는 고객들이 남긴 '디지털 발자국'을 활용해서 미래의 방문객들이 평소 무엇을 선호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15일 문을 연 뒤 100일이 지난 현재 그라운드220은 청년 세대들 사이에 한 번쯤 가볼 만한 장소로서 자리를 잡은 듯했다. 실제 LG전자가 내놓은 방문객 통계에 따르면 이용자 70%는 2030이다. 또 지역별로는 반경 10㎞ 이내 거주 방문객이 3분의 1, 그 이외 수도권 지역에서 3분의 1, 수도권 외부에서도 3분의 1 정도로 구성된다. 구 상무는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들면 멀리서도 이용객이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어 고무적"이라고 했다.
LG전자는 그라운드220을 젊은이의 공간이자 주요 신제품의 체험 및 테스트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젊은 세대는 첨단 기술 수용 성향이 짙은 '얼리 어답터'이기도 하기 때문. 이미 2월에 'LG 그램 프로' 팝업스토어를 그라운드220에서 운영했다. 구 상무는 "한국의 젊은 고객이 혁신 제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반응을 빠르게 살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