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명동역 6번 출구 앞. 한 청년의 노래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최모(27)씨의 길거리 공연(버스킹)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휴대폰으로 연신 영상을 찍었고, 누군가는 팁박스에 현금을 넣기도 했다. 그렇게 공연이 고조될 즈음, 갑자기 구청 직원이 나타났다.
"버스킹 신고 들어왔습니다. 허용되지 않은 적치물을 도로에 올려놓으셨으니 도로법 위반입니다. 한 번 더 걸리면 과태료 부과됩니다."
사유지가 아닌 도로 위에 앰프, 팁박스, 마이크를 두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주요 관광지에서 하나의 '길거리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버스킹이 '도로법 위반'이라는 문턱에 걸렸다.
당시 구청이 제시한 근거는 도로법 규정. 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물건 등을 도로에 내려두면 ㎡당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구청은 도로에 있는 적치물을 제거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버스킹엔 신고나 허가가 필요하진 않지만, 물건이 쌓여있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담당 공무원이 나가 이를 알려야 한다는 게 구청의 설명이다.
최씨는 "버스킹을 불법 적치물로 간주한다면, 이땅엔 버스킹 문화가 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음 문제라면 스피커 소리를 줄이면 되지만, 스피커와 악기 등을 도로에 두지 않고선 공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버스킹이 싫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로법 위반'으로 신고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다.
구청의 대응이 '민원'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답답하다고 최씨는 말한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주말에 대규모 공연이 열려도 사람들이 공식 허가를 받았겠거니 하면서 넘어가지만, 오히려 버스커들은 잦은 민원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그런 논리라면 도로를 차지하는 노점상 역시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럼 지방자체단체는 왜 버스킹을 막으려고 하는 걸까. 구청 쪽은 안전을 이유로 댄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만일 이태원 참사처럼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관리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해서, 도로 정비를 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명동에서 들어오는 민원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노점상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생존권을 위해 도로 점용료를 받고 허가를 내주지만, 노점상을 더 늘리지 않는 '점진적 축소' 방향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이 겪는 소음 문제도 버스킹의 발목을 잡는다. 버스커들이 자주 오는 서울의 한 장소 근처 상인 A(65)씨는 구청에 민원을 자주 넣는다고 했다. 그는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여러 사람이 공연을 연달아 하니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경찰에 신고해도 잠깐 소리를 줄일뿐 다시 시끄럽게 하는데 참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문화활동 장려'와 '인근 주민의 평온한 일상 보장'이라는 엇갈리는 가치 사이에서 절충안이 나오기도 한다. 중구청 체육관광과는 명동예술극장 측과 협의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사유지인 극장 앞에서 버스킹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강남역, 연남동 등도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을 통해 허용된 장소·시간에서 특정 데시벨 이하의 조건을 지키면 공연이 가능하다.
그러나 버스커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간도 아니거니와 앰프 사용 자제 등 조건이 붙어 자유로운 버스킹의 취지에 벗어난다는 것이다. 최씨는 "버스커들의 수요에 맞게 허용 시간, 장소를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법에 걸릴까 걱정된 최씨는 당분간 버스킹을 중단하기로 했다. 때때로 외국인들의 인스타그램에 그의 공연 모습이 올라올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곤 했지만, 공연할 곳을 찾기 힘든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버스커들의 고충을 들은 중구청 관계자는 "수요를 고려해 시간대 등을 다시 조율해볼 수는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