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북한의 전쟁설'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터라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최강국 미국이라 해도 4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논의에 불을 지핀 건 지난 1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실린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의 공동 기고문이다. 이 글은 김정은이 남한과의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단'(strategic decision)을 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트럼프와의 담판이 실패한 것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비교적 짧은 이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킨 건 현재 미국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과 저자들이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 미국의 바람과 달리 우크라이나에서의 전황이 심상치 않고 반이스라엘 여론도 만만치 않다. 칼린은 북한 문제만 50년을 다룬 미국 내 최고 북한 전문가이고 북한의 핵시설을 직접 방문했었던 헤커는 핵물리학자로 국제적 명성이 높다. 스탠퍼드대에서 방문연구원과 교수로 각각 십수 년간 재직했었기에 나하고도 함께 일한 인연이 깊다.
지난 7일 칼린과 헤커를 스탠퍼드대로 초청해 나와 대담하는 형식의 세미나를 열었다. 우선 이 논문을 쓴 의도가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북한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바이든 행정부에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 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김 대북특별대표마저 은퇴한 이후 정박 부차관보가 기본적인 실무만 챙기는 실정이다. 헤커는 이 글의 조회수가 10만을 넘었으며 관련된 글이 300편 이상 나왔다고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 조야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다음엔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했다는 그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다. 국지전인지 아니면 핵무기 사용까지 포함한 전면전을 의미하냐고 따졌다. 헤커는 "우발적 충돌이 아닌 계획된 행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칼린은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 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 지금은 준비단계"라고 부연했다. 또 과거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는 북한의 핵무장을 강조했다. 북한이 전쟁을 준비한다면 왜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겠느냐는 비판엔 북한의 무기를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했다.
칼린과 헤커의 주장은 미국 내에서도 다수 의견은 아니다. 전 북한주재 독일 대사인 토마스 쉐퍼는 전략적 결단이라기보다는 미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긴장을 높여 트럼트 재집권 시 딜을 하려는 포석이라고 반박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견해를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럼에도 이 두 저자의 위상을 고려할 때 쉽게 지나칠 문제는 아니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대북 정책은 지난 3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더욱 밀착할 것이며 핵·미사일 능력도 높여 갈 것이다. 반면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한과 다시 협상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의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며, 후자의 경우 한미 간의 정책적 불협화음으로 동맹이 어려워질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이 대만 침공을 강행할 경우 북한은 이를 기회로 전략적 결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당장 전쟁을 하진 않겠지만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트럼프 2기를 상정하는 등 전략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전략적인 공간을 확대하고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는 당연하지만 '올인'은 위험하다. 중국은 북·러와 한 묶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북한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여전히 중요한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