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종목의 유래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스포츠는 탐구 대상이 아닌 즐길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톤은 예외이다. 많은 사람이 그 유래를 알고 있다. 아테네와 페르시아가 마라톤 평원에서 전쟁을 치렀고, 한 병사가 쉼 없이 뛰어서 아테네의 승리를 알린 후 그 자리에서 숨졌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사실(史實)이냐는 지금도 논쟁거리이다. 다만 근대 올림픽을 창설한 쿠베르탱(Coubertin)이 만든 서사라는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는 어떤 목적을 위해 진실과 상관없는 서사를 짓고 퍼뜨린다. 우리 인생의 도처에는 이런 서사가 스며 있다.
확실치 않은 서사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은 하계 올림픽의 꽃이다. 42.195㎞라는 긴 거리를 뛰면서 끝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 코스는 40㎞였다. 이후 40.26~42.75㎞까지 대회마다 다른 거리를 적용했다.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1908년 런던 올림픽 거리를 기준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원래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 거리는 41.843㎞였다. 그런데 결승점을 왕족들의 관람석 밑에 두자는 요청이 있었다. 운동장의 구조상 이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왕족 관람석에서 잘 보이도록 352m를 추가했다. 현재의 42.195㎞는 영국 왕실이 빚어낸 산물이다. 또한 스포츠에 권력의 힘이 개입한 결과이다.
마라톤은 경기규칙이 매우 간단하다.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그냥 뛰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간편한 복장이 필수적이다. 다른 경기와 다르게 일반인들의 출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인이 선수들과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성적보다는 개별 사연에 의미를 담고 참가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났다는 출발선은 같다. 하지만 각자의 환경과 선택에 따라 삶의 결과는 달라진다. 또한 모든 사람이 경쟁에서 1등만 바라보며 살지는 않는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는 익숙하지만, 진부한 표현이다. 하지만 비견하니 인생은 확실히 마라톤과 닮았다. 누군가는 가짜 서사를 만들어 퍼뜨리고, 권력자는 반민주적 폭력성으로 힘을 과시한다. 무엇보다 긴 뜀박질 여정에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또다시 봄이 온다. 각종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신호이다. 마라톤 참가는 인생 여정에 또 다른 도전을 부여할 기회이다. 꽃피는 완연한 봄에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것은 삶을 반추하는 일기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