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 한 달 코앞… 의정 협상, 안 하나 못 하나

입력
2024.03.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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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백지화" "2,000명 타협 불가" 대립
신뢰받는 의사 대표기구 없어 대화 상대 모호
정부 "엄격한 법 집행" 강경 대응도 소통 차단
양보 대타협 필요… "정치권 중재 역할 나서야"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4주째 접어들면서 나날이 불어나는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와 의사계가 한발씩 물러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중재자로 나서 정부에 협상을 제안하고, 정부도 물밑에서 전공의, 교수, 의사단체 등을 만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의사들은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정부는 ‘증원 규모(2,000명) 타협 불가’를 각각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탓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치권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 대표기구 부재, 대화 상대가 없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 협상이 물꼬조차 트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의사들 입장을 대변할 대표기구나 대표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료법에 기반한 법정단체이긴 하지만 개원의 중심이라 전공의, 의대생, 교수와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비판이 의사 사회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다.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는 전현직 간부들의 막말과 특권의식에 국민은 물론 의사들조차 등을 돌렸다. 설사 의협의 대표성을 인정한다 해도 의협이 이달 말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당장 협상장에 나올 대표자가 없다는 현실적 문제에 가로막힌다.

전공의들도 소통 창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사직서 제출자가 1만 명이 넘는데도 “집단행동이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별 행동이기 때문이 대전협이 전체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대며 정부의 대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채 입을 닫았다. 뒤늦게 의사 선배이자 스승인 대학병원ㆍ의대 교수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공동 대응에 나섰지만, 정부에 협상을 요구하는 방식이 전공의들과 똑같은 ‘집단 사직 결의’라서 사태만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환자 생명보다 ‘후배 보호’를 중시하는 듯한 태도에 합리적 중재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정부도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의료계에서 협상 요구가 빗발치지만 정작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2주 전부터 의료계에 대표성 있는 협의체를 꾸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의료계 내부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 같다”며 “대학별 비대위가 꾸려지고 있으니 계속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정부 초강경 대응, 의정 소통 막았다

의정 간 소통이 막힌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충분한 설득보다 엄격한 법 집행을 앞세우면 협상할 여지가 줄어든다. 처벌 면제를 약속한 복귀 시한 제시 같은 유인책은 전공의들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겁박이자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초강경 일변도 대응은 대화 상대를 아예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자칫하면 비가역적인 의료시스템 붕괴와 무정부적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신하는 메시지도 문제다. 복지부는 의료 정책 주무부처로서 원칙에 따라 행정력을 집행해야 하겠지만, 국민 화합을 추구해야 할 대통령까지 “의료법을 위반하는 행동에 대해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엄포를 놓으면 전공의들이 돌아올 퇴로가 막힌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 지지 여론이 높은 의대 증원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의사 출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권력을 작동하려 한다면 국민들도 정부를 향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소통의 자세와 합리적인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보와 대타협, 그래야 국민이 산다

대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양보다. 전문가들은 전공의들이 ‘증원 철회’ 주장을 접고 환자 곁으로 하루속히 돌아와야 하고, 정부도 증원 규모 2,000명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중요하지, 증원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형준 위원장은 “정부가 의사 2,000명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과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2,000명 변경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회적 기구를 통해 의사 부족 문제를 논의한다면 증원 규모가 혹여 늘어난다 해도 갈등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타협을 위한 유화책으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유예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면허정지가 현실이 되면 의사들 반발은 더 거세질 것이고 정부도 뒷감당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의사들을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면 정부가 관용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에 대한 국민 반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적극적 중재 역할을 하기 어려운 만큼 결국 정치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최근 국회에서 의사 수 추계 연구자들과 토론회를 열었던 신현영 의원은 “의대 증원 지지 여론이 압도적이라 정치인들이 중재에 나서도 표심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의료계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며 “의정이 대화 테이블에 앉도록 정치권이 담론을 제시하고 사태 수습을 위한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견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표향 기자